입대 전, 나는 군 생활 동안 교회에 매주 참석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군대에서 우리 교회를 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부대 내에서는 기본적으로 일반 개신교, 불교, 천주교에 참석할 수 있지만 우리 교회에 가기 위해서는 부대 밖으로 나가야 한다.
훈련소에서의 6주 후, 나는 포천시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가벼운 이등병 약장에 짧은 머리였지만 앞으로의 군 생활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무거웠다. 훈련소에서 이어온 습관들을 지키기 위해, 불건전한 TV 프로그램이나 인터넷 사용을 피하고 동료들의 욕이나 음담패설로부터 멀리 있으려 노력했다.
몇 주 후, 목표한 대로 나는 부대장님을 찾아갔다. 대장님의 방문을 두드리려는 찰나, 심장이 두근거리며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일개 이등병이 대장님을 찾아가도 되는 건지, 군 생활이 어려워지는 것은 아닐지, 나를 건방지게 보시지는 않을지 고민이 됐다. 선교 사업을 했지만 귀환 후 처음으로 낯선 사람 앞에 나의 믿음을 알리게 됐고, 나를 보는 그분의 시선이 어떨지 걱정됐다. 속으로 짧게 기도를 드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대장님께, 매주 일요일 근처 의정부 와드에 참석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나의 걱정과는 달리 대장님은 침착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지만, 아쉽게도 교회에 참석하는 것은 어렵겠다고 말씀하셨다.
목표가 실패로 돌아가는 것 같았지만,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다. 가족들은 이런 나를 계속해서 응원해주었다. 우리 작은 형이 군 시절 겪었던 경험이 내게 큰 모범이 되었다. 형도 허락을 받지 못해 교회에 참석하지는 못했지만, 안식일을 충실히 지켰다. 특히, 형은 부대 안에서 회원 한 명을 찾게 되었고 같이 매주 성찬식을 하고 함께 경전도 읽고 말씀도 했다. 나는 형처럼 부대 내에서 회원을 찾으려 노력하면서, 혼자지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려 노력했다. 훈련소에 도착한 직후 받았던 의정부 와드 감독님의 허락에 따라, 계속해서 빵 대신 건빵으로, 또 물로 부대 안에서 홀로 성찬을 취했다.
기회일지 아니면 또 한 번의 아쉬움이 될지 모르는 상황이 또 다시 찾아왔다. 부대장님이 바뀐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새로운 대장님을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 나는 또 한 번 용기를 냈다. 방문을 다시 두드리고 새로운 대장님을 뵈었다. 나의 믿음을 소개하며 일반 개신교와 다르다는 점을 언급하고, 우리 교회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분은 고개를 갸우뚱하시며 혹시 교회의 다른 이름이 있지는 않냐고 물어보셨다. ‘몰몬교’라고도 불린다고 말씀드리니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분은 살짝 웃으시더니 자신이 한 때 우리 교회 회원이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많이 놀랐다. 그분은 자신이 침례받은 것을 기억했다. 자신의 형과 아버지가 다른 지역에서 계속 교회를 다닌다며, 내가 교회에 갈 수 있도록 알아보겠다고 하셨다. 그 말에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리고 불과 며칠 안에 대장님은 매주 의정부 와드 성찬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많은 의정부 회원들이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셨고,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새로운 와드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게는 교회에 참석하는 것뿐 아니라 대장님을 위해 기도하고, 돌아오시도록 길을 닦는 과제가 주어졌다. 어쩌면 주님께서는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나를 이곳에 보내셨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동료들은 종종 내가 어떤 교회에 다니는지, 무엇을 믿는지 물어보기 시작했고, 교회와 믿음에 대해 알리는 기회가 되고 있다.
내가 교회에 가도 되는지 새로운 대장님께 한 번 더 여쭤보지 않았다면 이런 축복과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나의 신앙을 시험하셨고 간절히 바라던 축복을 내게 주셨다. 설령 내가 교회에 가지 못하게 됐을지라도, 주님은 용기를 낸 행동에 대해 그 후에 다른 방식으로 축복하셨을 것을 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매 순간 우리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신다. 우리 앞에 놓인 쉬운 길이 아니라, 어려울지라도 우리에게 유익한 길을 택하고 신앙을 행사한다면 주님께서 이를 기뻐하시고 우리를 축복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