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영어는 배우되 교회는 다니지 않겠다고 말이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 교회에 관한 수많은 부정적인 글들이 나의 다짐을 확고하게 하는 듯했다.
집 근처 교회에 붙어있던 ‘원어민 무료 영어 회화’ 광고를 보고 친구와 함께 교회 문 앞까지 찾아갔지만, 교회에 대한 선입견이 계속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30분을 건물 밖에서 서성이다 결국 수업 끝날 무렵에 참석했다. 그렇게 처음 교회와 연을 맺게 되었다.
친절한 선교사들로부터 영어를 배우는 것이 좋았다. 몇 달을 영어 회화반에 참석했으며, 가정의 밤에도 참석했다. 그러자 한편으로, ‘무료’ 영어 회화임에도 불구하고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느껴졌다. 계속해서 이런 불편한 마음이 들면 더 이상 영어 회화반에 참석하지 않겠노라 마음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개인적인 문제로 고민하다 갑자기 가정의 밤에서 배운 기도가 떠올랐다. 살면서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기도라는 것을 해 보기로 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던 내가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하는 게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님께 이야기했을 때, 당장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오는 평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잔잔한 변화의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나는 침례를 결심했고 2016년 11월, 침례를 받았다.
이후 회원들의 가정에 초대받을 때마다 교회 안에서 결혼해 나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소망이 강해졌다. 홀로 교회에 다녀야 한다는 사실에 너무나 슬펐고 가족과 함께 교회에 다닐 수 있길 소망했다.
어느 날, 거실에서 서성거리던 막내 동생이 눈에 띄였다. 고민 끝에, 선교사님들과 미리 약속을 잡아 두고는 우연을 가장해 동생과 함께 선교사님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동생이 당황스러워했으나 곧 선교사들과 자주 만나게 되었고 동생 역시 침례를 결심했다. 동생의 확신은 점점 더 강해졌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동생의 침례를 반대하시며 ‘아직 어려.’라는 말씀만 반복하셨다.
부모님의 반대로 고민하고 있을 때, 감독단께서 부모님을 직접 만나보겠다고 제안하셨다. 부모님께서는 반대 의견을 확실하게 피력하기 위해 만남에 응하셨고 교회로 향했다. 나는 행여나 큰 갈등으로 번질까 불안했다. 저녁에 시작된 감독단과 부모님의 대화는 밤늦도록 계속됐다. 나는 발을 동동거리며 공과 방 밖에서 기다렸다. 긴 대화를 마치고 부모님께서 나오셨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놀랍게도 부모님의 표정이 부드럽고 밝았다! 쿵쾅거리던 심장이 기쁨과 설렘으로 더욱 빠르게 뛰었다. 감독단은 나와 동생의 미래, 교육을 강조하는 교회의 가르침, 청소년 표준, 건전한 청소년 문화 등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이야기하셨다고 했다. 교회에 대해 반대하던 부모님이 중립으로 돌아선 것은 기적이었다.
동생의 침례로, 나도 가족 회원이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 영어 회화반에 함께 참석했던 친구도 결국 침례를 받아 우리는 교회 안에서 영원한 친구가 되었다. 영어만 배우고 교회는 다니지 않겠노라 굳게 다짐했던 때도 있었으나 지금은 이 복음을 통해 영원한 가족과 우정을 함께 꿈꾸는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동생이 ‘나 침례받을게!’라며 내밀었던 동의서에 서명하며 아버지께서 하신 당부, 그리고 나의 대답이 다시금 떠오른다. “너희들, 이 교회에 다니면서 가족에게 소홀하면 안 돼. 다짐해야 해.” “우리 교회는 가족을 더 중시해. 걱정 마,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