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일: 2020년 12월
- 글: 김대연 (한국 교회역사위원회 전문가)
- 일러스트레이터: 이인규 (한국 교회역사위원회)
헌납의 의미
헌납은 우리 교회에서 아주 고귀한 행사로,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헌납은 어떤 것을 주님께 바치거나 봉헌하는, 또는 하나님의 왕국 건설에서 특정한 목적을 위해 어떤 것을 구별하는 행위이다. 이것은 공식적이며 절차에 따른 기도 행위를 통해 이뤄지는 신권 기능이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회원들에게 헌납은 적어도 두 가지 명백한 기능을 갖는다. 첫째는 원하는 목적을 촉진하는 성스러운 공간 또는 시간을 규정하기 위해 하늘에서 힘을 불러 내린다. 둘째는 참가자들이 헌납된 물체 또는 행동의 의미에 자신들의 영혼을 집중시키며 그들을 봉헌한다. 이렇게 해서 세상적인 것이 성스러운 관계 속으로 들어오며, 하늘의 축복을 간청하여 하늘과 땅의 힘이 합쳐져 의로운 사업을 일으킨다. …
땅과 나라도 신성하게 지정된 목적을 위해 헌납될 수 있으며, 때로는 두 번 이상도 가능하다. 1841년 10월 24일, 올슨 하이드 장로는 감람산에 올라 유대인의 귀환과 성전 건립을 위해 팔레스타인 땅을 헌납했다. … [이제까지] 32개 국 및 대륙이 복음 전파를 위해 헌납되었다.”(Encyclopedia of Mormonism, New York: Macmillan, 1992, 367p)
올슨 하이드 장로의 성지 헌납 (1841년)
회복의 시대에 초대 십이사도 중 하나였던 올슨 하이드 장로는 1841년 2월 13일에 미국을 출발하여 몇 달간 영국에서 체류한 후 네덜란드와 독일, 터키와 레바논을 경유해 10월 21일, 우여곡절 끝에 지친 몸을 이끌고 팔레스타인에 도착했다. 그는 감람산에서 아래를 내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금 내려다보고 있는 이 도시가 정말로 죄와 가증함으로 가득하여 구주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그분의 눈에서 연민의 눈물을 흘리게 한 그 예루살렘이란 말인가. 외로이 서 있는 저 올리브 나뭇가지의 잎들이 부드러운 미풍에 하늘거리는 기드론 계곡 사이의 저 조그만 땅이 악마의 권능이 불멸의 구속주의 고귀한 주변을 온통 지옥의 깜깜한 암흑으로 휩싸이게 한 바로 그 겟세마네 동산이란 말인가?”(때가 찬 시대의 교회사, 종교 교육원 교재, 237쪽)
10월 24일 일요일, 그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성문이 열리자마자 기드론 계곡을 지나 감람산의 한적한 곳에서 성지를 공식적으로 헌납하는 기도문을 작성했다. 그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 땅의 불모 상태를 없애 주시고, 생수의 샘을 여시어 메마른 대지에 물을 주시며, 이 땅의 힘을 입어 포도나무와 감람나무가 그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가 꽃을 피우고 번성하[게 하옵소서.]”(때가 찬 시대의 교회사, 종교 교육원 교재, 제18장, 십이사도의 선교 사업”, 237쪽) 올슨 하이드 장로의 헌납 기도 전문은 History of the Church, 제4권, 456~459쪽에 수록되어 있다.
1955년 헌납 당시의 한국땅
헌납 기도에는 헌납 대상에 대한 기도하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이 나타나기 마련이며, 이를 바탕으로 축복을 간구하고, 때에 따라서는 약속과 예언이 추가된다. 그렇기에 시현으로 성지를 미리 보았던 올슨 하이드 장로도 미국 출발 후 9개월 만에 성지를 직접 보고 영감에 따라 기도했을 것이다.
한국을 헌납한 조셉 필딩 스미스 회장이 서울에 도착한 것은 1955년 8월 1일이다. 헌납은 그다음 날에 바로 진행되었다. 공항에서 숙소로 오며 거리와 사람들을 본 그는, 남산에서 시내를 내려다보던 그는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그가 본 것은 전쟁이 남긴 폐허 더미와 고된 삶에 지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한 논문에는 당시 한국의 경제 통계가 다음과 같이 언급되어 있다.
“Economic Cooperation Administration(미국 경제협조처: 필자 주)의 1950년 10월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 개전 후 4개월간 몇몇 주요 산업의 파괴 비율은 화학공업의 경우 70%, 농기계 산업 40%, 섬유산업 70%, 고무산업 10%였다. 한국 교통부의 통계를 보면, 철도 46.9%, 교량 1,453곳(총 49km), 가옥 600,000채, 도로 1,656개가 파괴되었다.”(“Is Economic Growth and Development Realizable for Africa? – Review of Asian Countries: A Theoretical Perspective”, World Journal of Social Sciences and Humanities, 2019, Vol. 5, No. 3, 154p, found at http://pubs.sciepub.com/wjssh/5/3/5)
인용된 보고서는 개전 후 고작 4개월 동안만을 언급한 것이다. 전쟁이 그 이후로 2년 반이 넘게 이어진 점을 고려하면, 이런 통계 수치는 빙산의 일각으로, 거의 모든 생산 시설과 생활 터전이 무너진 것으로 봐야 한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간의 전쟁이 끝난 후, 국제연합은 한국의 부흥과 재건을 위해 UNKRA(국제연합 한국재건단)이라는 기구를 설립한다. 그곳의 조사단 일원으로 1950년 10월에 방한한 벵갈리 메논 위원(인도 국방장관 및 유엔 수석대표)은 다음과 같이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중세 시대에 살고 있다. 과연 쓰레기 더미에서 꽃이 피어날 수 있겠는가?” 전쟁에서 미군과 국제연합군을 총지휘했던 맥아더 장군조차도 “이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이 나라는 100년이 지나도 복구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위 인용처)
스미스 회장은 이런 참혹한 전후 상황을 직접 보고, 또 여러 사람에게서 그런 정보를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과연 어떤 축복과 약속이 담긴 헌납 기도를 드렸을까?
이 땅을 위한 헌납기도
위에서 인용한 백과사전이 출판된 1992년 당시까지 헌납된 국가는 32개 국인데, 거기에 한국도 포함된다. 1954년에 해롤드 비 리 회장이 한국을 방문한 후, 교회 본부는 한국을 복음 전도를 위해 헌납하기로 결정했고, 십이사도 정원회의 스미스 회장이 임무 지명을 받았다. 그는 한국으로 와서 8월 2일 화요일에 서울 남산에서 이 땅을 헌납했다. 그렇다면 스미스 회장은 2년 전까지 전쟁을 치렀던 이 폐허를 둘러보며 어떤 축복을 남겼을까? 하이드 장로의 헌납처럼 기도문을 남기지는 않았을까? 필자는 대학 시절인 1986년에 그 질문을 편지에 담아 교회 역사부에 보냈는데, 역사부는 이렇게 회신했다.
“귀하의 편지에 회신을 보냅니다. 우리는 한국 땅의 헌납에 관한 처치 뉴스 기사 2건을 복사해 보냅니다. 하지만 기도를 적은 문서는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또한 다른 두 기사와 The Church Encounters Asia라는 책의 한 단원을 복사해서 동봉합니다.”(교회 역사부에서 필자에게 보낸 서신, 1986년 7월 23일)
기도문이 없어 헌납 기도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위 편지에 언급된 The Church Encounters Asia에 언급된 참석자의 증언을 통해 짐작해 볼 수는 있다. The Church Encounters Asia는 1965년부터 1968년까지 한국 선교부 제2대 회장을 지낸 스펜서 제이 팔머가 쓴 책이다. 그는 귀환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즉 1970년에 이 책을 출판했다. 이 서적은 우리 교회가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시작된 초기 역사를 다룬 귀중한 사료이다. 그 책의 한국 편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헌납에 참석했던 로드니 더블유 파이에 따르면, 이 기도에는 큰 권능이 가득했다고 한다. 스미스 회장은 이 땅이 사탄의 사슬에서 자유롭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를 통해 택함받은 땅이 되도록 문자 그대로 사탄에게 명령했다. 그는 특히 그 당시까지 군대 조직의 책임 아래 있던 한국 회원들에게 축복이 내리고, 자신을 잘 준비하여 그 나라가 진리를 받아들이게 하는 책임을 감당하도록 기도했다. 한국 근대사를 얼룩지게 했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격변을 참석자 모두가 인식할 기회가 되었다. 스미스 회장은 안정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약속했다. 참석자들은 복음이 그 나라에서 최소한 전파되기 시작할 것이라는 안도감을 느꼈다.”(The Church Encounters Asia, Spencer J. Palmer, Deseret Book, 1970, 100)
“헌납 기도를 마치고 언덕에서 내려왔는데, 한 소년이 Children’s Friend라는 잡지를 들고 서 있었고, 거기에는 나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그 소년은 내게 그 기사를 보여 주며 말했다. ‘여기 보세요, 회장님에 대한 얘기가 다 실려 있어요. 회장님이 어젯밤에 저를 집사에 성임하셔서 이제 저도 교회를 도울 수 있어요.’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 소년을 안아 주었으며,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이 있는 그 땅에 부여된 특권에 대해 주님께 감사드렸다.”(The Life of Joseph Fielding Smith, Joseph Fielding Smith Jr./John J. Stewart, Deseret Book, 1972, 309)
“이들 동양의 여러 나라에서 선교 임지에 아들을 보낸 어머니들께, 특히 아버지들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들들이 극동으로 부름을 받아 일본이나 한국, 극동의 섬들에서 봉사하게 되었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 그 땅에서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은 우리처럼 선한 사람들입니다. …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면, 우리만큼이나 선한 사람들입니다.”(조셉 필딩 스미스, 1955년 10월 연차 대회 보고, 43쪽)
십이사도 정원회의 스미스 회장은 솔트레이크시티에서 기차를 타고 출발해 샌프란시스코에서 배편으로 하와이에 들러 성도들을 방문한 후 다시 배편으로 일본으로 가던 중이던 1955년 7월 7일에 79세 생일을 맞았다. 3주 이상 집을 떠나 있던 그는 이제 갓 집사에 성임된 증손자뻘 소년을 안고 어떤 의미의 눈물을 흘렸던 것일까? 혹시 미대륙을 방문하신 예수께서 어린아이들을 “하나씩” 안으시고, 축복하시고, 기도하신 후 흘렸던 눈물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제3니파이 17:21~22 참조) 아마도 이 참혹한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 천진난만한 소년에 대한 연민과 복음 안에서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해 주기를 바라는 희망이 뒤섞여 있었을 것이다. 스미스 회장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그 뒤에 곧 개최된 연차 대회에서 동양에는 하나님의 훌륭한 자녀들이 많이 있고, 그곳에서 선교사로 봉사하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힘주어 말했다.
힝클리 회장의 회고
이런 기도가 헌납 이후로 이 땅에 준 영향력의 정도는 오로지 하나님만이 아시겠지만, 분명한 것은 주님의 선지자가 드린 기도는 이 땅을 뒤덮은 어두운 구름을 물리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조셉 필딩 스미스 회장을 개인적으로 잘 알았고, 훗날 스미스 회장 아래서 십이사도 정원회 일원으로 함께 봉사하고, 또 그 이후 교회 회장이 된 고든 비 힝클리 회장의 이런 회고는 되풀이해서 음미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저는 1960년부터 한국을 방문하였습니다. 약 50년 동안 한국에서 교회의 사업이 진행되는 사이 저는 45년간 한국을 오갔습니다. … 여러분, 지금 제 머릿속으로는 그런 것들을 포함한 많은 기억이 스쳐 지나가고 있습니다. 한국 주민들은 몹시 가난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최악이라고 할 만한 상황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낡은 피아노를 운반할 때 사용하는 껍데기 안에서 살던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변했습니다. …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하셨습니다. 여러분 때문에 주님께서 이 땅을 축복하셨습니다. … 그리고 이 나라를 안전하게 지켜 주셨습니다. 평화와 우리의 안락을 주셨습니다. 이 나라를 위해서, 이 나라의 의로움을 위해서 이러한 것들을 허락하셨습니다. 저는 온 마음을 다해 그 축복이 성도들이 복음을 생활화했기 때문에 온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 백성들은 보호받을 것입니다. 앞으로 더한 고통이 오더라도 보호받을 것입니다.”(헌납 50주년 한국 대회에서, 리아호나, 2005년 9월호, 지역 소식 23~24쪽)
- 출처:
1. 올슨 하이드 성지 헌납, https://www.churchofjesuschrist.org/media-library/images/orson-hyde-dedicates-palestine-37726?lang=eng&clang=ase
2. The Church Encounters Asia, Spencer J. Palmer, Deseret Book, 1970, 10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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