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기쁜 심판대 앞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하늘을 날고 있는 새들의 모습

서울 남 스테이크 김위선 자매

개종한 지 7년째였던 2007년. 아들 수민이가 집사 신권을 받고 두 번째로 성찬을 전달했던 2월의 어느 새벽 3시에 아이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아들은 구급차에 실려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고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나는 다급히 영등포 와드의 김영환 감독님께 전화를 드리고 병자축복을 부탁드렸다. 담당 의사는 “계속해서 심장 압박을 가하면 아이의 내부 장기가 파괴될 수 있으니 이제 심폐소생술을 중단해야 합니다”라고 말했지만, 당시에는 그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교회 형제님들이 도착할 때까지만 지속해 달라고 부탁한 뒤 나는 응급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주님, 나사로의 기적을 보여주십시오.” 7년 전 개종한 후로 늘 좋은 것만 주시던 주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어줄 것이라고 한 치의 의심 없이 믿었다.

 기다리던 감독단이 응급실에 도착했고 김영환 감독님과 두 보좌인 조병갑, 노동일 형제님이 아이에게 성별된 기름을 붓고 병자축복을 하셨다. 나는 나사로의 기적을 계속해서 떠올렸다. 그러나 결국 아들은 4시 45분에 사망 선고를 받았다. 사망 선고를 받은 아이는 여전히 따뜻했다. 아이는 그저 눈만 감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가 떠났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주님께서 아무 징조도 없이 아들을 불러가실 리가 없었다.

 죽은 아들을 가운데 두고 세 형제님과 함께 찬송을 불렀다. 날이 밝아와 아침 7시경이 되자 자리를 비켜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두 시간가량 찬송을 불렀지만, 아들은 깨어나지 않았고 끝내 차가운 냉동고로 보내야만 했다. 그제야 주님께서 수민이를 데려가셨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기도할 틈도 없이 이러한 비극이 왜 내게 도둑처럼 찾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아들이 떠났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누군가를 탓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울지 못했다. 아들이 발인에 들어갈 때도, 재가 되어 나왔을 때도, 수목장했을 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면 인간적인 감정에 휘둘려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그분을 원망할 것만 같았다. 아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그 길을 원망과 슬픔만으로 배웅한다면 아들이 아버지께로 성큼성큼 걸어가지 못할 것 같았다. 원래 아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긴 귀한 영이었고 육체의 부모를 떠나 다시 영의 부모에게로 돌아간 것인데 그분을 원망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이었다. 구원의 계획을 믿고 있다면 이생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인정해야만 했다.

12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인간적인 마음으로 그때 흘리지 못했던 눈물도 흘리기도 한다. 돌이켜보니 이 긴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을까 싶다. 내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빛이 아니었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심지어 12년 전 그 당시에도 나는 성신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다.

교회 형제자매님들 역시 내게 한 줄기 빛이 되어주었다. 아들에게 병자 축복을 주지도 못하고 떠나보냈다면 평생 한이 되었을 텐데 새벽 네 시가 다 된 늦은 시간에 의관을 정제하고 달려와 준 감독단은 내 평생의 은인이다. 감당하기 힘든 상실감에 힘들어하는 우리 가족에게 따뜻한 위로와 사랑을 건네준 교회 분들의 친절도 잊을 수 없다. 어떤 형제님은 내게 수민이가 “이 현세를 월반하여 일찍 졸업”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하늘에서 더욱 발전하고 있을 아들을 생각하며 굳건히 신앙을 지킬 수 있었다.

이생을 사는 동안 우리는 예상치 못한 시련을 겪는다. 나 역시 제법 살아오는 동안 피하고만 싶은 시련이 원하지 않는 시간대에 놓여있곤 했다. 기도로서 고난을 피하고 싶었지만 피할 수 없었던 적이 많았다. 고난의 때에 나의 기도의 내용은 ‘이 시련이 지나가게 해주십시오’가 아니라 ‘이 시련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주시고 이 시련의 의미를 알게 해주십시오’였다. 이러한 신앙으로 기도할 때 우리가 겪는 모든 일이 “경험이 되고 유익이 되리라”는 것을 안다. (교리와 성약 122:7 참조) 역경으로 인해 신앙을 버리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만, 그것은 자기 파괴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영원한 세상으로 돌아갔을 때 주님께서는 우리가 왜 그 시련을 겪어야만 했는지, 모든 것을 알려주실 것이다.

이제 나는 현세의 삶의 분명한 목적을 안다. 나의 소망은 내 앞에 어떤 고난이 놓여있든, 고래의 뱃속이나 억울한 죽음의 마지막에 놓일지라도 시련을 통해 단련되고 더욱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다. 또한 매일 성신과 함께하는 생활을 하며 크고 작은 모든 잘못을 회개함으로써 깨끗한 상태로 “여호와의 기쁜 심판대”에 서길 소망한다. (모로나이서 10:34 참조) 그리고 그날에 나는 사랑하는 아들 수민이를 다시 만나 서로 안고 함께 기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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