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2018 지역 계획 동영상에서 야마시타 장로님은 “비전이 없는 삶은 껍데기의 삶이다.”라는 속담을 인용하셨습니다. 지역 계획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비전을 예언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는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의미하며,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이를 드러내십니다. 미래를 하나의 이미지로 볼 때, 혹은 진리를 (시각적으로) 보게 될 때, 우리는 비전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지역 계획의 비전에서, 지역 회장단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 또는 우리가 향하는 곳의 상태, 즉 미래의 모습을 계속해서 눈앞에 그려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 곧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진정으로 개심하도록, 또한 하나님의 왕국을 먼저 구함으로써 복음에서 기쁨을 느끼도록 사람들에게 권유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아이어링 회장님, 홀런드 장로님과 같은 선지자들이 주신 축복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우리 자신에게 그러한 축복이 실현되는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질문: 헨리 비 아이어링 회장님은 “회원들이 회복된 복음에 관한 자신의 간증을 만나는 모든 사람과 열심히 나눌” 미래를 예언하셨습니다. 그분은 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저는 이 큰 기적이, 이 큰 변화가 회원들 주변의 누군가에게 일어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회원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날 것이라 믿습니다.” 이 예언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큰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그려 볼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러한 선지자들의 비전을 확실히 이해하고, 이를 우리 마음에 생생하게 그려 보는 것으로 그 일을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우리 지역 회장단에서는 권유하고 입을 열라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권유해 왔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의 진정한 개종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마음의 변화란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로 향하고, 그분의 제자가 되어,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침례를 받은 순간부터, 우리는 주님께 이르는 제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제자의 길의 한 부분이 선교 사업입니다.
질문: 1월에 올해 지역 계획을 처음 읽었을 때, 선교 사업이 이 계획의 중심이라는 것이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선교 사업을 생각하면 친구와 지인을 선교사에게 소개하거나 토론에 참여하는 것, 아니면 길에서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것과 같은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처럼 선교 사업을 하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거나, 선교 사업을 하도록 “강요받는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들은 지역 계획을 어떻게 실천해 나갈 수 있을까요?
선교 사업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임하는 것이 버겁다면, 우리는 기꺼이 여러분과 함께 더 노력하고 싶습니다.
선교 사업이 우리의 인생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모든 회원이 선교사라는 말은 사실 아주 단순합니다. 선교사들은 토론을 가르치는 일 말고도 많은 일을 합니다. 선교부 회장이었을 때, 저는 선교사가 영적으로 진정 합당한 생활을 하는 것, 그 자체로 이미 선교 사업을 하고 있다고 늘 선교사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회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말해, 복음의 기쁨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사람들 앞에 빛을 발할 수 있으며, 그런 회원 한 분 한 분이 선교 사업에 쓰이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십시오.
어느 날 밤늦게 선교사들이 자전거를 타고 급히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한 선교사가 어떤 남자를 지나치며 “안녕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동반자도 지나가면서 “안녕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 남자가 “잠깐만요” 하며 선교사를 불러 세웠습니다. 그 남자는 “당신들은 누구신가요?”라고 물었고, 바로 구도자가 되었습니다. 일전에 그 구도자를 만날 기회가 생긴 야마시타 자매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왜 선교사들을 불러 세운 건가요?”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별 뜻은 없었어요. 선교사들에게서 빛이 나고 있어서 그냥 불러 세운 것뿐이에요.” 저는 그 선교사들에게서 실제로 빛이 나고 있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회원들에게서도 빛이 납니다. 여러분이 누구에게든 어디서든 입을 연다면 여러분의 기쁨은 커질 것입니다. 우리끼리만 복음의 기쁨을 나누고 다른 사람들과는 복음의 기쁨을 나누지 않고 침묵을 지킨다면 우리가 지상에 살고 있는 이유는 다 충족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자신만을 위해 성전에 갈 때 느끼는 기쁨은 작습니다. 하지만 성전에 누군가를 데려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조상의 이름을 가지고 갈 때, 이것은 더 큰 기쁨입니다. 교회에 자주 발걸음을 하지 않는 사람을 성전으로 데리고 가서 함께 걸으십시오. 쉽사리 함께 갈 수 없는 가족이나 친구, 아내를 데리고 가십시오. 이러한 일들 역시 훌륭한 선교 사업입니다.
질문: 로버트 시 게이 장로님은 “강화하는” 행동이 모두 선교 사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강화’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가 강화한다는 말을 하면, 여러분은 약한 사람이 다시 온전히 일어서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강화하는 것”의 일부분입니다. 사람들을 돕거나, 약간의 용기를 불어넣거나, 한두 걸음 앞으로 나아가도록 누군가의 어깨를 조금 밀어주는 것,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구원 사업이고 또한 사명입니다. 사람들에게 사랑을 보이고, 돕고, 봉사하고, 서로에게 봉사를 베푸는 것, 이런 것이 선교 사업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선교 사업을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회원과 선교사들의 목적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나아오도록 권유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강화하는 것이라면 어떤 작은 행동이라도 모두 이 목적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저는 선교사들에게 “토론을 하기 전이나 후에 진실한 사랑과 감사를 담아 구도자들과 포옹을 하라고, 또 토론에 참석하는 회원들과도 포옹하라고” 권고합니다. 온몸으로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는 포옹은 매우 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이나 도전 또는 문제에 직면해 있을지라도, 기독교인으로서 먼저 마음을 열고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진실한 감사를 보입시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도 변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사회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을 돌리십시오
우리는 때때로 불필요한 억측을 버리고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얼마 전에 본부 청녀 회장인 보니 엘 오스카슨 자매님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왜 일본인 부부들은 교회에서 각자 따로 앉나요?” 저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부부들이 연단 위가 아닌 연단 아래에 앉을 때도 따로 떨어져 앉곤 합니다. 성전 대기실에서도 형제들과 자매들이 따로 앉습니다. 부부가 함께 앉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함께 앉는 것이 좋습니다! [부부는 함께 앉으면 안 된다는 규정이 없는데도, 일본에서는 부부가 따로 앉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야마시타 장로님은 이러한 것이 ‘불필요한 억측’의 예이며, ‘불필요한 억측’을 버리고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옮긴이] 우리가 주님의 뜻인 “높은 기대치와 위대한 사랑”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억측’을 버린다면,] 우리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아주 단순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최근 연차 대회에서 발표된, 가정 복음 교육 및 방문 교육을 대체하는 ‘성역’이 그 좋은 본보기가 됩니다. “회장님, 저는 지난달에 세 가정을 방문했습니다.” 이런 것은 성역에 대한 보고가 아닙니다. 한 가정도 방문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회장님, 김 형제님 가족은 이러이러하고, 이 자매님 가족에게는 이런 어려움이 있어서 정원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와 같은 방식의 보고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로서 보고해야 할 임무를 완수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성역은 방문 횟수를 세거나 단순히 형식적인 행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 주며, 그들에게 권유하고 복음을 전하는 등 이 모든 것을 기꺼이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비전을 실현하는 것은 태도를 바꾸고 우리 마음을 주님께로 돌려 우리 자신이 먼저 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마음이 변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여러분에게 하도록 권유하는 것은 먼저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입을 열어 권유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 권유에 응할지, 응하지 않을지는 그들의 선택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성공은 그 사람이 교회에 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권유를 하는 데에 있습니다. 권유함으로써 우리는 개종의 길에서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한 걸음을 내딛기 때문입니다. 미소를 짓고 입을 여는 것은 또한 우리가 마음을 연다는 것을 나타내 보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와서 보라”
“회원이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일곱 가지 방법”이라는 소책자에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장로님3은 우리가 매일 하는 대화에서 교회 또는 종교와 관련된 단어를 사용하도록 권고합니다. 예를 들어, 세미나리, 가정의 밤, 성경, 신앙, 예수 그리스도, 감독단, 상호부조회 등의 단어를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비회원들이 이해하지 못할 단어도 있겠지만, 회원들 사이에서 우리는 그런 단어들을 자주 사용합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대화할 때도 그런 단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날이 월요일이라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일찍 귀가해야겠어요. 월요일은 가정의 밤을 하는 날이거든요.” 그들이 “그게 뭔데요?”라고 묻는다면, “내일 말해 줄게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궁금한 것이 생길 때, 그때가 우리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됩니다. 모든 것이 거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중요한 점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설명하려고 계속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오늘은 이 부분만 설명해 줄게요.”라고 말합니다. 그런 후 다시 만날 기회를 얻기 위해 “또 시간이 있을까요?”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선교사들을 초대하십시오. 이런 식으로 선교 사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을 키워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이 정말로 누구인지를 그들에게 보여 주고 사랑을 담아 계속해서 현명하게 설명한다면, 그것은 권유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런 권유는 “와서 보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제 사무실에는 성전, 십이사도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 선교사 등 상징적인 그림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집에도 사람들이 와서 보면 특별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것입니다.
삿포로 성전 일반 공개 때 한 종교학 교수가 방문했는데, 저는 우연히 그 사람과 단 둘이서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를 별의 왕국실에서 달의 왕국실로 안내하는 동안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당신들은 모두 경험을 통해 배우고 그것을 느끼시는군요.” 그는 성전이 바로 그런 곳임을 이해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가고 영을 통해 느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첫 번째 일은 권유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와서 보면 이해하게 됩니다. 그들이 마음으로 이해하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우리의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는 논리로 구도자를 그리스도께로 이끌거나 인도하려 하기보다는 영의 도움을 받아 인도합니다. 구도자들은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선교사를 비롯하여 우리 모두가 그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점, 인간의 관점
저는 1970년에 열린 일본 세계 박람회 덕분에 교회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몰몬 전시장에서 카메라를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그 전시장을 나온 후에 카메라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다시 그곳으로 갔습니다. 선교사들이 저를 위해 카메라를 찾아보았고, 결국 그것을 찾아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저는 처음으로 소개 카드에 제 이름과 주소를 남겼습니다.
저는 개종 후에도 오랫동안, 제가 몰몬 전시장에 방문한 것은 선교사들이 저에게 다가왔기 때문에 일어난 우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님께서 그 일이 일어나게 하셨다는 것을 분명히 압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지켜보고 계시고 저를 위해 항상 뭔가를 하려고 하셨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제 감정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분께서 제 친구나 구도자들을 위해 하신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바로 눈앞에 있는 것들만 본다면, 하나님의 눈으로 보지 못합니다. 또 행하지 않는다면, 그분의 손길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입니다.
이따금 여러분은 마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준비하신 듯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를테면 매우 힘든 일을 겪은 사람, 곧 출산을 앞둔 사람, 과거에 여러 차례 선교사들을 만났던 사람, 이미 몰몬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 등이 그런 예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런 사람을 하나님의 눈으로 본다면, 말을 걸기가 쉬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입을 열 때 모든 것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하는 작은 행동이 하나님의 사업으로 이어지며,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게 됩니다. 우리 자신도 또한 기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며 우리의 과거와 현재는 물론, 다가올 고난과 어려움도 아십니다. 매우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어떻게 속죄하려 노력하시는지를 느끼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특히 젊은이 여러분, 자신이 느낀 것을 인터넷에서 나누시기 바랍니다. 영은 언제나 속삭이며 도움을 주므로, 그것을 보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느낄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이 일을 혼자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일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며, 장차 큰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제가 종종 초등회 회장들에게 하는 권유는 이런 것입니다. 가령, 초등회 어린이들에게 주일학교 구도자 반을 1~2분간 방문하게 합니다. 그런 후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박 형제님, 염 형제님, 최 자매님, 오늘 우리 교회에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 방문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로 여러분들께 노래를 하나 불러 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잠시 찬송가나 어린이 노래책에 나오는 곡을 1절 정도만 부릅니다. 어린이들은 하나님과 더 가까이 있기에 이는 실제로 아주 놀라운 힘을 발휘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 주에도 오세요.” 만일 그 구도자들이 교회에 오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이런 어린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낄 것이며, 교회에 다시 오고 싶어질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초등회 어린이들이 그런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시고, 그들과 함께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의논해 보시겠습니까?
청남과 청녀 또는 가족들도 자신들이 잘하는 것을 활용하여 뭔가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후에 와드와 스테이크에서 SNS(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를 사용하여 이런 활동들을 나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가족은 이런 활동을 했습니다. 그것은 이러이러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활동은 정말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저는 북 아시아 지역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이 비전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여러분 각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주의 깊게 숙고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뛰어난 지능으로 수많은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실 수 있습니다. 와드 평의회나 각 조직의 회장단 모임에서 이 사안에 대해 더 깊이 논의해 본다면,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하나님과 선지자께서 우리에게 간절히 바라시는 “높은 기대치”임을 간증드립니다.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개심할 때 우리는 예수께로 향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오는 이는 바로 주님이십니다. 이러한 과정이 우리를 강화하고 우리의 구원 그 자체가 됩니다. 우리는 소망을 갖게 될 것이며, 우리의 근심은 평안으로 바뀌게 되고, 두려움은 기쁨으로 바뀌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