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우리에 대해 어떤 질문을 합니까?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묻는 질문들에, 할 수 있는 한 그저 간략하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말씀 드릴 수 있게 되어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요즘 언론 매체들로부터 인터뷰 제안을 자주 받습니다. 대부분이 아시겠지만, 저는 최근에 래리 킹 라이브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그렇게 하기로 동의한 이유는, 일면 위험하기도 하겠지만,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을 세상에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겠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에서, 래리 킹 씨는 저에게 단도 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대관장님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대관장님은 거대한 종교의 지도자이시죠.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십니까?”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 역할은 교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백성들 앞에 모범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지키기 위하여 목소리를 내는 것이며, 우리의 문명과 사회에서 중요한 가치들을 옹호하는 것이며, 이끄는 것입니다.”

이 대답은 즉석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질문을 결코 예상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대답한 기조 위에서, 이 시간에는 언론 매체나 다른 교회의 사람들로부터 반드시 질문 받는 예닐곱 가지의 질문을 제시해 보고 싶습니다. 

저는 이 질문들을 무작위로 선택했으며, 첫번째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질문도 순서에 따라 배열하지 않겠습니다. 누구와도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의 종교를 존중하며, 그 종교에 따라 살고자 하는 소망 또한 존중합니다.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묻는 질문들에, 할 수 있는 한 그저 간략하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질문 1: 신회, 즉 신에 대한 몰몬의 교리는 어떤 것인가?

첫번째 시현 이후부터 사람들은 이 질문을 해왔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으며, 그들이 전통적으로 믿어 온 하나님을 계속해서 믿는 한, 우리가 현대의 계시를 통해 알게 된 하나님에 대해 간증할 때마다 계속 그렇게 질문할 것입니다.

예언자 요셉 스미스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분명히 알고 사람끼리 마주 서서 이야기하듯 우리가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 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복음의 첫 원리가 되겠습니다.”(예언자 요셉 스미스의 가르침, 328쪽)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신을 믿는다.”(신앙개조 제1조) 신앙개조의 이 첫번째 조항은 우리의 교리를 요약한 것입니다. 우리는 아타니시우스 신경도, 니케아 신경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또한 그 밖의 전통이나 인간의 이성에 의해 결정된 다른 어떤 신경[강령]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언자 요셉 스미스가 지혜를 얻고자 숲 속에 들어가 기도하던 중에 경험한 다음 이야기를 우리 교리의 기초로 받아들입니다. “그 빛이 내 위에 머물렀을 때,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찬란함과 영광을 지닌 두 분이 내 위 공중에 서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중 한 분이 나의 이름을 부르면서 다른 한 분을 가리켜 말씀하시길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요셉 스미스서 2:17)

분명히 두 분이 그 앞에 실제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그는 그분들을 보았습니다. 그분들은 사람과 같은 모습이셨지만, 훨씬 더 영광스러운 모습이셨습니다. 그는 그분들과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두 분 다 각각의 개체이셨습니다. 그분들은 뼈와 살을 갖고 계셨고, 이 사실은 후에 계시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회원인 우리의 모든 입장이 바로 이 영광스럽고 타당한 첫번째 시현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이 첫번째 시현은 이 때가 찬 경륜의 시대를 커튼을 열어 보여 준 사건이었습니다. 그 어떤 기초 교리도, 그 어떤 가르침도, 그 어떤 생활 기준도 이 처음의 선언보다 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만약 요셉 스미스가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 및 그의 사랑하는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그가 말한 다른 모든 것들이 분명한 진실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이는 우리가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는 길로 인도하는 데에 있어 핵심이 되는 교리입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입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섬깁니다. 우리는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받들겠다고 성약을 맺습니다. 우리가 속한 이 교회는 그분의 이름을 딴 교회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주님이요, 구세주요, 구속주이시며, 바로 그분을 통해 속죄가 이루어졌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구원과 영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질문 2: 당신의 교회는 동성애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가?

먼저, 우리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결혼이 주님께서 허락하신 성스러운 것임을 믿습니다. 우리는 또한 주님의 집에서 행사되는 영원한 신권의 권세를 통해 결혼이 영원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람들은 자칭 게이나 레즈비언이라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묻습니다. 이에 대한 저의 대답은 “우리는 그들을 모두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통제하기 매우 어려운 성향들이 있습니다. 만약 이들이 그러한 성향에 따라 행동하지만 않는다면, 그들은 다른 회원들과 똑같은 축복과 권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약 순결의 법이나 교리의 도덕적 표준을 어긴다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교회의 징계를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돕고 싶습니다. 그들이 굳건해지도록 하고,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도록 돕고 싶으며, 그들의 어려움을 잘 이겨내도록 돕고 싶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부도덕한 행위에 빠지거나, 소위 동성 결혼이라고 하는 상황을 고수하고, 지지하고, 그대로 생활하려고 한다면, 그저 침묵만 지키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허용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정해 주신 결혼의 중대하고도 거룩한 기초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며, 결혼의 본질적인 목적, 즉 자녀를 낳아 기르는 목적을 소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질문 3: 낙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

질병 예방 센터의 보고에 의하면, 미국에서만 1995년 한 해 동안에 120만 건의 낙태가 자행되었다고 합니다.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입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신성한 주님의 선물을 어떻게 이렇게 많은 남녀가 거부하고 있단 말입니까?

자녀란 참으로 훌륭한 존재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를 보십시오.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인간을 창조해 내는 것보다 더 위대한 기적은 없는 것입니다.

낙태란 추악한 행위이고, 생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이고, 반드시 양심의 가책과 슬픔과 후회를 가져오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이를 강력히 반대하지만, 분명한 예외는 두고 있습니다. 근친 상간이나 강간에 의한 임신인 경우, 출산으로 산모의 건강이나 생명에 위험이 초래될 것이라는 유능한 의료진의 판단이나 태아가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출생 후에도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는 유능한 의료진의 확인이 있을 경우는 예외로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은 극히 드물며, 그 가능성도 매우 희박합니다. 이러한 상황 같은 문제를 겪고 있는 분들은 신권 지도자들과 상담을 하고, 진지한 기도를 통해 올바른 결정에 대한 확신을 먼저 얻으시기 바랍니다.

질문 4: 일부다처제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무엇인가? 

오늘날 미국에서는 이 문제가 신문이나 다른 대중 매체에 자주 거론됩니다. 이는 일부다처제를 행하고 있는 일부 사람들이 가정에서 가족을 학대하는 문제가 대두되면서 일어난 일입니다.

저는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이 교회는 일부다처제를 행하고 있지 않으며, 이와 아무런 관련도 없음을 밝힙니다. 그들은 이 교회의 회원이 아닙니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이 이 교회를 다닌 적도 없습니다. 그들은 민사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그들도 그러한 위반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대가를 치러야겠지만, 물론 교회는 이에 대한 아무런 법적 권한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 교회 회원이 일부다처제를 행한다면 그들은 이 교회의 가장 큰 징계인 파문을 당할 것입니다. 그들은 민사법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이 교회의 법도 어긴 것입니다. 신앙개조는 우리에게 이렇게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우리는 왕, 대통령, 통치자, 장관에게 순종함을 믿으며, 또한 법을 존중하고 지키며, 지지함을 믿는다.”(신앙개조 제12조)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자가 동시에 세상의 법은 어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몰몬 원칙주의자”라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두 단어를 함께 사용하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나아가, 한 세기 이전에 이미 주님께서는 일부다처제를 금하도록 예언자를 통해 명하셨습니다. 따라서 일부다처제는 주님의 법에도 어긋납니다. 

질문 5: 이 교회가 놀라운 성장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성장하고 있습니다. 매우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자연 증가와 개종 침례자들을 합하여, 매년 약 40만 명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천만명의 회원을 기준으로 할 때, 4퍼센트씩 성장하는 것인데, 이는 교회로서는 매우 훌륭한 성장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치관이 흔들리는 세상에서 자신을 지탱시켜 줄 튼튼한 닻을 찾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위의 세상이 자꾸 혼돈스러워져 가는 이때 그들이 꽉 붙들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새 개종자들로서 환영 받고, 편안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들은 성도들의 따스한 우정을 느낍니다.

그들에게는 임무와 책임이 주어집니다. 그들은 이 주님의 사업이 발전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한 부분을 맡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진리를 찾는 그들을 도와 줄 선교사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곧 말일성도로서의 자신에게 많은 것들이 기대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그것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능력이 있으며, 그들은 그 일들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삶에 변화를 가질 것을 요구하는 종교를 원합니다. 그들은 훌륭한 성도로서 자신에게 온 이 훌륭한 변화에 대해 간증하고, 항상 열성적이며 충실하게 생활합니다.

질문 6: 배우자 및 자녀 학대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취하는가? 

우리는 어떠한 형태의 학대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배우자나 자녀에 대한 어떠한 육체적, 성적, 언어적, 정서적 학대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가족 선언문은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배우자와 자녀들을 사랑하고 돌보아야 할 엄숙한 책임을 지니고 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과 의로움으로 양육하고, 그들에게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 필요한 사항을 충족시켜 주[어야] … 할 거룩한 의무를 지니고 있다 … 남편과 아내 곧 어머니와 아버지는 이 의무의 이행에 대해 하나님 앞에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가족 - 세상에 전하는 선언문”, 성도의 벗, 1996년 6월호, 10∼11쪽)

우리는 이러한 악행을 근절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함을 깨닫고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자녀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인식할 때,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양육하고, 돕고, 인내를 갖고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힘과 책임감을 갖게 됩니다.

배우자나 자녀를 학대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신권을 소유할 자격이 없습니다. 배우자나 자녀를 학대하는 사람은 누구도 참된 이 교회의 회원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학대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며, 누구든지 마땅히 교회의 징계를 받게 될 것입니다.

질문 7: 교회는 어떻게 운영 자금을 조달하는가? 

때때로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들은 이 교회의 큰 부와 많은 자산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글을 씁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자산이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 주님의 집을 지었으며, 매년 새로운 큰 건물들을 많이 짓고 있습니다. 우리는 신학연구원 중등부와 대학부 같은, 훌륭한 고등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것도 필적할 수 없는 가족 역사 시설이 있으며, 엄청난 선교 조직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가족들과 선교사 자신들이 선교 사업 비용을 충당하지만, 선교사 숙소 및 기타 시설들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돈을 필요로 하는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프로그램들은 돈을 만들어 내기 보다는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들입니다. 이 교회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비가 듭니다. 이 범세계적인 조직의 운영을 위한 경비는 충실한 성도들의 성스러운 십일조로 마련됩니다. 십일조의 법은 참으로 훌륭하고 영광스러운 원리입니다. 쉽게 이해하고 따를 수 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재정의 율법입니다.

저는 성도들이 정직한 십일조를 낼 수 있도록 신앙을 갖게 해주신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그들은 십일조 때문에 더 가난해졌을까요? 우리는 주님께서 그분의 방법으로 더욱 풍족하게 채워주신다는 것을 믿고, 간증드립니다. 십일조는 세금이 아닙니다. 신원이 보장된 자발적인 헌금입니다. 이는 훌륭한 약속을 담고 있는 원리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라기 3: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분의 약속입니다. 그분은 이 약속을 지키실 수 있으며, 이를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간증드립니다.

주님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대로 살기로 한 우리 모두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업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 책임자이시며, 그분들의 계획과 방법대로 이 교회가 운영되고 있으므로, 이에 따르는 모든 축복도 이곳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왜 그토록 행복한 사람들로 보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신앙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 모든 것을 주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과 감사와 순종하는 마음을 갖고 생활하는 아들과 딸들을 보살펴 주실 것이라는 마음속의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확신을 갖고 생활한다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이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죄란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범법이란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거짓된 말이나 행동도 결코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계명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업이 참됨을 알기에, 각자 앞으로 나아갑니다. 우리 모두가 새로이 주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그분을 바라보아 살기 위해 노력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