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홀로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회의 세 번째 구성원인 성신의 변함없는 동반을 약속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활 속에서 계시를 받을 수 있는 특권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느덧 3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3년 전, 어느 이른 새벽에 전화를 받는 데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제 남동생 스티브가 갑작스런 심장 마비로 밤새 운명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한 순간에 제가 가장 신뢰하던 친구가 가버린 것입니다.

그 후 며칠간 스티브와 그의 아내와 아이들을 사랑했던 수많은 친지들이 콜로라도에 있는 그의 집을 다녀갔습니다. 제 사랑하는 친구 일곱 명이 장례식에 참석하고자 멀리 떨어진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였습니다. 그들 중에 제 동생과 만난 친구는 아무도 없었지만, 저를 위안하러 왔던 것입니다. 그들이 저를 부둥켜안고, 이렇게 말했을 때의 제 느낌을 여러분도 이해할 것입니다. “우린 너를 혼자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어.” 그들은 말과 행동으로 신성한 원리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누구도 홀로 있는 것은 좋지 않으며 그렇게 되도록 예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외로움이란 이 세상에서 겪어야 할 경험의 일부인 듯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으로 외로움을 만드셔서 우리가 역경에 처할 때 결코 혼자서 겪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전 최근에 어느 모임에서 연사가 복음대로 사는 것이 너무도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임이 끝날 무렵, 전 지쳐 있었습니다. 그는 복음대로 사는 것이 마치 중노동이 부과된 종신형인 듯이 표현했습니다. 복음대로 사는 것은 힘겹지 않습니다. 힘겨운 것은 삶 그 자체입니다. 힘겨운 것은 성약을 타협하거나 가치관을 깨뜨린 후 그런 것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리려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지상에서 경험하거나 저지르게 될 실수나 골치 아픈 일, 또는 실망 등을 헤쳐 나갈 수단을 제시해 주는 좋은 소식입니다.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회원이 된다는 것은 특권입니다. 몇 가지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지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 가장 강력하고 거룩한 힘인, 하나님의 신권을 소유한 사람들에 의해 인도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적인 여성 조직이자 하나님의 예언자에 의해 조직된 상호부조회 회원입니다. 오늘 밤 우리는 주님께서 기름 부으신, 살아 계신 예언자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께 가르침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분은 모든 면에서 예언자로서 손색이 없는 분이시며, 그 분의 말씀을 듣고자 귀를 기울이는 모든 사람의 삶을 축복하는 계시를 받고 계심을 간증합니다.

저는 이러한 놀라운 특권에 하나를 더하고자 합니다. 니파이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너희가 … 성신을 받으면 성신은 너희가 행하여야 할 모두를 너희에게 보여 주시리니,”(니파이이서 32:5) 로렌조 스노우 대관장은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모든 말일성도들에게 주어진 위대한 특권은 일상 생활에서 매일같이 영의 나타내심을 받음으로써 빛을 알 수 있고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더듬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대회 보고, 1899년 4월, 52)  에즈라 알 스노우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의 종말이 올 때까지 [성도들에게] 세상의 어리석음에 대해 말한다 하더라도 아무런 느낌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성신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준다면, 성신은 외부의 영향력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 줄 것입니다.” (위민스 엑스포넨트지, 1873년 7월 15일, 63 쪽)

우리는 신회의 세 번째 구성원인 성신의 변함없는 동반을 약속 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활 속에서 계시를 받을 수 있는 특권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홀로 있지 않습니다.

성신은 우리의 마음과 이해력을 넓혀 주며, 약점을 잠재우고 유혹에 대항할 수 있게 도와주며, 겸손을 일깨워 주고 회개하도록 자극하며, 우리를 신비로운 방법으로 인도하고 보호하며, 우리에게 지혜, 신성한 격려, 마음의 평온, 변화의 소망, 인간의 철학과 계시된 진리 사이의 차이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 등을 부여해 줍니다.

성신은 아버지와 아들의 성역자이자 사자로서, 그분들의 영화롭고 만유에 가득한 실재와 그분들과 우리 개개인과의 친밀한 관계에 대해 증거합니다. 영이 임재하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의 사명을 깨닫거나 우리의 진로가 올바르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세상의 어떠한 위안도 보혜사의 위안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힝클리 대관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생활에 임하는 성령의 동반보다 더 거룩한 축복은 없습니다.”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시 지역 대회, 1995년 4월 22일) 한편 브리감 영 대관장님은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주님의 영이 [우리를] … 인도했으면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영의 인도를 받을 수 있는 특권에 훨씬 못 미치는 삶을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설교집 12:104-5)

사탄과 그의 앞잡이들이 온 땅에 배회하며 거짓과 낙담과 절망을 퍼트리는 이 때가 찬 경륜의 시대의 황혼기에 성신의 은사라는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방어책으로 무장한 우리가 항상 그 은사를 온전히 취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영적으로 그저 “대충 떼우기”에 급급하여 손 닿을 곳에 있는 힘과 보호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아닙니까? 주님께서 기꺼이 주시고자 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것에 만족하여, 주님과 동반하기보다는 혼자 힘으로 꾸려 나가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까?

이 교회는 계시의 교회입니다. 우리의 당면 과제는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도록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그분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듣는 데 있습니다. 그분은 이같이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간구할 때마다 내 성령의 가르침을 받으리라.” (교리와 성약 6:14)

상호부조회에 속한 자매들인 우리가 주님의 음성에 귀기울기를 배우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흔하게 영의 인도를 구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걱정됩니다. 아마도 우리는 방법을 모르고 있거나 그 방법을 배우는 것을 가장 우선된 것으로 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혹은, 개인적인 실패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자신을 합당치 않게 여겨, 주님이 진실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따라서 계시를 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혹은, 우리 생활이 너무 번잡한 나머지 영이 거할 자리가  없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비극입니다! 성신은 우리가 도저히 혼자서 감당할 수 없을 때 우리에게 낙천적인 생각과 지혜를 축복해 줍니다! 의로운 말일성도 여성들을 유혹하기 위해 사탄이 즐겨 사용하는 전술이 분주함이란 것은 놀랄 것이 못 됩니다. 번잡한 일상 생활에 온통 정신이 팔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몰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매 여러분, 우리는 영적인 것들을 구하지 않고 살 여유가 전혀 없습니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를 어머니요, 자매요, 지도자요, 친구로서 의지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주님의 인도를 받는 여인은 응답과 평온을 찾기 위해 어느 곳에 마음을 기울여야 할지 압니다. 그녀는 확신을 갖고 어려운 결정을 내리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지도자와 같은 영에게서 조언을 얻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책임은 주님의 음성 듣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어느 날 배를 짓기 위해 니파이가 받은 가르침에 대한 것을 읽다가 이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체 주의 가르침을 니파이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러한 질문 때문에 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직접적인 교통에 관해 찾을 수 있는 모든 경전상의 증거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경전에서 찾은 구절의 여백에다 조그맣게 붉은 가위 표시를 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지금, 제 경전은 여기저기 가위 표시로 가득 메워져 있는데, 그 모든 것들이 주께서 그분의 백성과 참으로 교통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저 자신이 이것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인 실망으로 인해 너무나도 극심한 외로움을 겪던 시기가 기억납니다. 어느 날, 위안을 받고자 경전을 찾는 가운데, 저는 특별한 한 구절에 집중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 구절은 제가 다른 수백 개의 구절을 찾게 해주었으며 깊은 탐구의 기간을 가질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후에야, 다른 구절이 제게 마치 네온 광고판처럼 반짝거렸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주께서 속죄의 권세가 우리의 짐을 가볍게 한다는 것을 제게 가르치시고자 하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때로 제가 받은 가장 명확한 속삭임은 경전에 깊이 빠져 있는 가운데 왔습니다. 경전은 계시의 통로입니다.경전은 우리들에게 영의 언어를 가르쳐 줍니다. 영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은 기꺼이 그렇게 하고자 하는 열의와 연계되어 있습니다. 힝클리 대관장님은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는 방법으로 “어떤 일이든지 무릎 꿇고 도움을 구한 다음 일어나서 수행하러 가는 것 외에  달리 이룰 수 있는 방법을 모릅니다.” (성도의 벗, 1998년 1월호, 영적인 능력 러셀 엠 넬슨, 16쪽)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신앙과 근면의 결합이야말로 영의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 더 할 나위 없는 교과 과정입니다. 구세주께서는 “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을 것임이요,”(니파이삼서 12:6)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굶주리고 목말라 하는 것은 순수한 영적인 노력을 하게 해줍니다. 성전에서 경배를 드리고, 회개하여 더욱 순수해지고, 용서하고 용서를 구하며, 진지한 금식과 기도를 드리는 것은 모두 영을 느끼는 우리의 감수성을 증진시켜 줍니다. 영적인 수고는 실제로 작용하며, 영의 속삭임을 통해 전달되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배우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브르스 알 맥콩기 장로는 “어떠한 값비싼 대가도, 어떠한 큰 희생도, 그 결과 우리가 성신의 은사를 향유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신앙개조의 새로운 증인, 253 쪽) 우리 개개인의 보호자요 안내자로서 성신의 끊임없는 동반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기꺼이 해야 하며, 어떤 약점과 탐닉을 버려야 하겠습니까?

물어 볼 만한 질문입니다. 다음을 분명히 깨닫도록 합시다. 사탄은 이 교회의 자매들인 우리를 영으로부터 떼어놓기를 즐겨 합니다. 그가 말일의 하나님 왕국에서 우리의 영향력과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덕과 고결한 품성을 지닌 여인들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빛을 발산하는 모습을 지닌 선의 횃불이 되는 여인들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상호부조회 자매들에게 이것은 결코 과장된 목표가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의무입니다. 어느 곳에서도 주님께서 저희보다 더 신뢰하는 여성 단체는 없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경청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여성, 주님은 이 교회의 여성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전세계에 있는 이 교회의 여성들에게 오직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영향을 미칠 것을 기대하고 계십니다. 올 봄에  저는 시베리아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 곳에 있는 자매들을 만나고자 임대한 집회장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영이 나를 압도함을 느꼈습니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여성들인 러시아의 개척자 자매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부에서 엠마와 엘리자를 만났을 때 느꼈을 그러한 느낌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만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었습니다. 모임이 거의 끝나 갈 무렵, 선교부장의 부인인 에피모프 자매가 제게 몸을 기울여 그녀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영어 단어로 “매우 성신”이라 속삭였습니다.  참으로 성신이 함께 합니다. 영은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의로운 여성들 가운데에서 억제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기 동안 단지 본부 상호부조회 대회를 한차례 더 남겨 두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 세계 역사의 전환기에 우리를 무대에 올려 주실 만큼 우리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세에서 영겁의 세월을 거치며 훈련을 통해 준비되어 온 그러한 여성으로 일어서야만 하겠습니다. 우리 자신에 미치지 않는 삶을 살거나 어쩌다 생각나면 영의 은사를 구하곤 하는 사치는 우리와 무관합니다.

우리는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오늘 밤 우리 모두가 각자 어떠한 것도 우리와 주님의 영 사이에 끼여들지 않도록 하겠다는 결심을 합시다. 다시 한 번 우리의 영적 경계를 신장하며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하늘의 영감을 더욱더 열심히 구하는 일에 매진합시다.  우리를 주님께 이끌어 주며, 그분과 묶어 주며, 그분에 대한 우리의 간증을 변경할 수 없도록 인봉하는 분이 바로 성신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속주라는 사실과, 결코 우리가 홀로 있을 필요가 없는 길을 마련해 주셨다는 사실을 압니다.  제가 어려웠을 때, 제 친구들이 저를 위로했듯이 성신은 우리를 강화시키며 인도하실 것입니다. 저는 주님의 다음과 같은 약속이 참됨을 간증합니다. “나는 너희 앞에 앞서 갈 것이므로 너희 오른편이나 왼편에도 있으리라. 나의 영은 너희 마음에 있겠고 나의 천사는 너희를 둘러 있어 너희를 감싸 주리라.” (교리와 성약 84:88) 온 마음을 다하여 그분의 음성을 경청하고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우리를 이 곳에 보내어 수행하도록 한 일들을 행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