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잠재력은 무한합니다. 우리의 유산은 신성합니다.

최근에 저는 극단적인 유행을 좇는 옷차림과 몸치장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끈 젊은이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중 한 명이 말했던 “난 진정 내가 누구인지 찾고자 노력한다”는 말에서 그들의 공허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 일은 제가 마침 교회 모임을 참석하고 오다가 겪은 일인데, 그 모임에서 초등협회 어린이들이 “나는 하나님의 자녀”(찬송가187장 참조) 를 불렀었습니다. 그와 같이 서로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일들을 경험하고 나면 우리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원적인 존재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영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는데(교리와 성약 88:15 참조), 영과 육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영과 육에 대한 확고부동한 이해는 선을 행하기 위한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신체

우리 신체가 갖는 경이가 흔히 간과되어 왔습니다. 자신의 체격이나 외모 때문에 열등 의식을 느껴 보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보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모습을 지녔으면 하고 바랍니다. 직모의 머리를 한 사람은 곱슬머리를 원합니다. 반대로, 곱슬머리인 사람은 직모를 원합니다. 어떤 숙녀 분들은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는 생각에 “의도적인 금발”이 되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여러분의 몸은, 어떠한 재능을 타고났든지 간에,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물입니다.(러셀 엠 넬슨, “인간의 위대함“, 성도의 벗, 1988년 1월호, 64∼69쪽 참조) 몸은 육의 장막으로, 여러분의 영이 거하는 성전(고린도전서 6:19 참조)입니다. 신체를 연구하다 보면 그것을 기획하신 신성한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두 개의 생식 세포가 결합되는 것으로 육체의 형성이 시작되는데, 그중 하나는 어머니로부터 나머지 하나는 아버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 두 세포에는 새로 태어날 인간의 모든 유전 정보가 담겨 있는데, 육안으로는 도저히 분간할 수 없는 미세한 공간 속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세포 안에서 부모 양측에서 물려받은 염색체 23개가 각기 결합합니다. 이 염색체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의 신체적인 모든 특성을 결정 짓는 수천 개의 유전자를 담고 있습니다. 이 두 생식 세포가 결합한 후 22일 정도 지나면, 조그만 심장이 뛰기 시작합니다. 26일이 되면 피가 순환하기 시작합니다. 세포는 계속해서 증식하며 분할합니다. 어떤 세포는 사물을 보는 눈이 되고, 또 다른 세포는 뭔가를 들을 수 있는 귀가 됩니다.

신체 기관은 어느 것이나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경이로운 은사입니다.  눈은 일종의 자동 초점식 렌즈입니다. 서로 분리되어 있는 두 눈은 신경과 근육에 의한 조절을 통해 하나의 3차원적 형상을 만들어 냅니다. 눈은 뇌에 연결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본 것들을 기록합니다. 전기 코드나 전지는 전혀 필요 없습니다.

두 귀는 음파를 가청음으로 변조하도록 고안된 치밀한 장치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고막은 일종의 진동판 구실을 합니다. 미세한 소골은 음의 진동을 증폭시켜 신호를 신경을 통해 뇌로 전달하는데, 이곳에서 소리를 감지하고 기억합니다.

심장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지닌 펌프입니다. 심장에는 피가 흐르는 방향을 조종하는 섬세한 판막이 4개 있습니다. 이 판막들은 하루에만도 10만 번 이상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일년에는 3600만 번을 개폐합니다. 그런데도, 질병으로 인해 변형되지 않는 한, 이 판막은 이같은 스트레스를 거의 무한정으로 견뎌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어떠한 인공 심장도 아무런 고장없이 그와 같은 빈도로 그렇게 오랫동안 작동할 수 없습니다.

성인의 심장은 매일같이 7천 570리터 들이 탱크를 채우기에 충분한 양의 혈액을 퍼냅니다. 이 일은 성인 남성(68.2키로그램 무게의 성인) 한 명을 단지 4와트 정도의 에너지만을 사용하여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의 높이로 들어올리는 것과 같은 힘입니다. 심장의 융기부에는 특수 라인을 따라 에너지를 전달하여 수없이 많은 심근 섬유들이 다 함께 움직이게 하는 전기 발전기가 있습니다.

우리 몸에 있는 그 외의 다른 소중한 기관에 대해 말씀드릴 것이 아주 많습니다. 그것들은 각기 놀라운 방식으로 기능하지만, 제 능력이나 시간상 다 설명드릴 수 없습니다.

몸의 다른 기관들도 비록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경이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기능 보조 체계란 것이 있습니다. 을 이루고 있는 각 기관들은 그 쌍을 이루는 다른 기관에 의해 즉각적인 기능 보조를 받습니다. 뇌나 심장, 또는 간과 같이 단일 기관일 경우 경로를 통해 혈액이 공급됩니다. 만약 이 중 한 경로에 손상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설계에 의해 기관이 보호받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 몸의 자기 방어 체계를 생각해 보십시오. 몸을 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고통을 느낍니다. 감염에 대항하여 항체를 만들어 냅니다. 항체는 당면한 문제를 퇴치하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계속 유지되어 미래의 감염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 줍니다. 어느 날 저는 길가의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을 들이킨 세 살 짜리 꼬마들을 주의 깊게 관찰한 적이 있습니다. 아마 이들이 취한 세균의 수는 엄청났을 테지만, 그 꼬마들 가운데 병난 아이는 없었습니다. 더러운 물이 아이들의 위에 들어갔을 때, 위액 속에 들어 있는 염화수소산이 그 즉시 오염된 물을 처리하여 어린 아이들의 생명을 보호했던 것입니다.

피부도 보호 기능을 합니다. 피부는 또한 과도한 열기나 냉기로 인해 야기되는 부상에 대해 미리 경고합니다. 심지어 신체의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음을 알리는 신호를 보냅니다. 열이 나면, 피부에서는 땀이 납니다. 두려움에 떨 때면, 피부가 창백해집니다. 또한 당황한 경우에는, 얼굴을 붉히게 됩니다.

우리 몸은 자가 치유를 합니다. 부러진 뼈는 다시 강하게 됩니다. 찢겨진 피부는 스스로 치유가 됩니다. 순환 기관에서의 누출은 저절로 봉쇄됩니다.

우리 몸은 노화된 세포를 재생시킵니다. 예를 들면, 적혈구는 평균 약 120일 정도를 삽니다. 그런 후에 새롭게 생성된 세포에 의해 대체됩니다.

몸은 그 자체의 필수적인 구성 요소들을 조절합니다. 필수 원소와 화학 구성물이 계속적으로 조절됩니다. 주변 기온의 변동차에 상관없이, 체온은 아주 미세한 범위 내에서 엄밀하게 조절되고 있습니다.

만일 정상 기능, 자기 방어, 자가 치유, 재생, 그리고 조절과 같은 이러한 특질이 영원토록 계속된다면, 이곳에서의 우리의 삶은 끝없이 계속될 것입니다. 자비롭게도 창조주께서는 궁극적으로 육체의 죽음을 가져오는 노화 및 다른 과정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죽음을 제 때가 아니거나 비극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죽음은 출생처럼 삶의 한 부분입니다. 경전은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육체적인 죽음을 모면하려 함은 온당하지 아니하니, 그러한 일로 위대한 행복의 계획을 깨뜨리겠음이라.”(앨마서 42:8, 앨마서 12:24∼27 참조)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해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기쁨입니다.(시편의 저자는 신회의 견해를 이렇게 표현했다.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시편 116:5))

죽음이 한창 나이의 사람에게 찾아 올 때, 우리는 이 생에서의 삶이 지속되지 않게 하는 바로 그 율법이 육신이 불사 불멸을 입는 부활의 때에 충족되리라는 사실을 아는 지식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필멸의 존재로 이 지상에 거하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의 자녀로 그분과 함께 살았습니다. 영은 영속적인 존재입니다. 전세에서 순진 무구한 상태로 존재했으며(교리와 성약 93:38 참조), 육신이 죽은 후에도 계속 존재할 것입니다.(앨마서 40:11 참조: 아브라함서 3:18 참조) 영은 육신에 생기와 인격을 제공합니다.(욥기 32:8 참조) “모든 영은 물질이니, 다만 극히 청결하고 순수하여”(교리와 성약 131:7)

“인간의 영도 인간의 신체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야렛의 동생이 주님의 전세에서의 몸을 보았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음을 이제 너희가 보았느냐? 만인이 태초에 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느니라.

“…네가 지금 보는 바 나의 몸은 영체라. 내가 나의 영체의 형상대로 인간을 지었고, 이제 내가 네 앞에 영으로 나타내어 보인 것같이 나의 백성들에게 육신으로 나타내어 보이리라.”(이더서 3:15∼16)

영의 발전에 따른 그 귀결은 영원합니다. 우리가 심판받게 되는 속성들은 영의 속성들일 것입니다.( 육신이 아니라 영은 적극적이며, 책임감 강한 영혼의 구성 성분입니다. 영이 없는 육신은 죽은 것입니다.(야고보서2:26 참조) 그러므로 선 또는 악을 택하고, 최후 심판시에 그것이 지니게 될 긍정적인, 부정적인 품성들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것은 바로 영입니다.(앨마서 40:3∼7 참조)) 이러한 속성에는 고결함, 동정심, 사랑 등과 같은 덕성이 포함됩니다.(예를 들면 “신앙, 덕행, 지식, 절제, 인내, 형제애, 경건, 자비, 겸손, 근면”(교리와 성약 4:6) 같은 것들) 영은 육신과 결합하여 그 안에 거하게 될 때 비로소 영원한 진보에 절대적으로 없어서는 안될 방법으로 이러한 속성을 개발하고 표출할 수 있게 됩니다.(니파이이서 2:11∼16, 21∼26; 모로나이서 10:33∼34 참조)

영과 육신은 하나로 결합될 때 지극히 높은 가치를 지닌 생령, 곧 살아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신체적 한계

대체로 잘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일부 사람들은 육체적 한계를 갖고 태어납니다. 신체의 특정 부분이 비정상적일 수 있습니다. 신체의 조절 시스템이 정상적인 균형을 잃어 버린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병이나 죽음에 전적으로 영향을 받는 육신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신이라는 은사는 참으로 소중합니다. 그것이 없다면 우리는 충만한 기쁨을 얻을 수 없습니다.(교리와 성약 138:17 참조)

신성한 숙명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완전한 몸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가장 사랑스러운 영들이 연약한 육신에 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체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중에는 바로 그러한 도전을 이겨나가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영적으로 위대한 힘을 발전시키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그러한 분들은 하나님께서 충실하고 순종적인 자녀들을 위해 예비해 두신 모든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아브라함서 3:25∼26 참조)

결국에는 “영과 육체는 … 완전한 모양으로 … 다시 결합될 것이요, 수족과 뼈의 마디가 … 모양 그대로 회복될”(앨마서 11:43; 앨마서40:23; 전도서12:7; 교리와 성약 138:17 또한 참조) 시간이  올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덕분에 우리는 그분 안에서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모로나이서 10:32 참조)

개인적 행위

이러한 진리가 우리들의 개인 행위에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우리의 창조주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먹이를 주는 주인의 선함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어항 속에서 헤엄치는 금붕어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가 어떠한 축복을 받을지라도…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하느니라.”(교리와 성약46:32)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그분 앞에서 끊임없이 덕을 쌓고 거룩한 행실을 할 수 있습니다.(교리와 성약 46:33 참조)

우리는 앞으로 자신의 몸을 자신의 성전으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고린도전서 3:16 참조) 우리는 결코 자신의 몸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더럽혀지거나 훼손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인간의 육신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가르쳤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린도전서 3:17)) 신체적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식사량을 조절하며 운동해야 할 것입니다.

신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영적 건강에도 똑같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 않겠습니까?(고린도전서 9:24∼27 참조; 히브리서12:9 참조) 신체적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운동을 해야 하듯이, 영적인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노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조화와 그분의 계명을 지키겠다는 소망을 낳습니다. 기도는 지혜와 선함과 겸손을 얻는 열쇠입니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권고에 대해 보다 신중한 태도를 갖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영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육신만을 위한 조언을 합니다. 예를 들어, 지혜의 말씀에 위반되는 지시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육체적, 영적 축복을 가져오도록 계시된 율법을 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교리와 성약89:18∼21 참조; 로마서 8:6; 니파이이서9:38∼39; 교리와 성약 29:34-35 참조) 생식 기관의 사용에 관한 일부 권고들은 단지 ― 그리고 부적합하게 ― 신체적인 고려에만 근거를 두고 있을 뿐입니다. 그와 같이 편중된 의견을 조심하십시오! 바울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로마서 8:13)

그 경고는 외설에 관한 것으로, 이는 매우 중독되기 쉬운 것입니다. 경전에 나오는 경고는 명확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로마서 6:12) 중독이 육체와 영을 잠깐 사이에 예속시켜 버립니다. 중독에서 벗어날 완전한 회개는 아직 우리를 도울 수 있는 필멸의 육체가 있는 이 생에서 가장 잘 실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몸을 더럽힐 수 있는 어떠한 것도 몸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됩니다. 시각이나 촉각 또는 청각과 같은 감각이 뇌에 불결한 기억을 전달하게 하는 것은 신성한 것을 더럽히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순결을 간직하고,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우리로 하여금]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디모데전서 6:9)을 피할 것입니다.  또한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디모데전서 6:11. 12절은 이렇게 계속되고 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것은 우리가 선택할 사항이다.)을 것이니, 이러한 것들은 건전한 영혼을 교화해주는 덕성들입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의 잠재력은 무한합니다. 우리의 유산은 신성합니다. 우리가 모든 생각과 행동을 통해 그 거룩한 유산을 언제나 존귀하게 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