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마음을 가짐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고린도후서 9:15)와 풍성한 축복을 우리에게 가득 부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까?

옛날, 멀리 떨어진 어느 나라에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고 계셨습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 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누가복음 17:11∼19)

다윗은 시편 30편에서 이렇게 맹약합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나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데살로니가인들에게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고린도후서 9:15)와 풍성한 축복을 우리에게 가득 부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까?

잠시 암몬의 다음 말씀을 상고해 봅시다. “이제 나의 형제들아 하나님께선 사람들이 어디 있든지 모든 사람들을 살려 주심을 우리가 아노라. 주님께선 그의 백성을 낱낱이 헤아리시는도다. 이것이 나의 기쁨이요, 주께 드리는 커다란 감사이니, 진정으로 내가 영원토록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앨마서 26:37)

예전에 저명한 사업가였던 로버트 더블류 우드럽은 미국 전역을 순회하면서, “인간 관계론 핵심 과정”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강연에서, 우리말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감사합니다”라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쌩큐, 그라시아스, 당케, 탁스, 어떤 언어로든지 간에, 자주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쓰게 되면 우리의 기분이 밝아지고, 친분 관계가 넓어지며, 완전을 향한 여정에서 생활을 보다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에는 간결성, 심지어 “순수성”까지 들어 있습니다.

감사 표현이 얼마나 아름답고 웅변력 있는가 하는 것이 몇 년 전의 한 신문 기사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콜롬비아 경찰청에서는 금요일에 주인 없는 자전거 100여 대를 경매에 붙였다. 첫번째 자전거가 올라오자, 11세된 한 소년이 “1달러(약 1천원 상당)”를 불렀다. 그러나 응찰 가액은 훨씬 높았다. 매번 새로운 자전거가 올라올 때마다 이 소년은 기대에 차서 계속 “1달러”를 불렀다.

43년 동안 도난당하거나 분실된 자전거 경매를 해온 경매인은 경주용 자전거가 올라올 때마다 그 소년의 기대가 더욱 부풀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런데 자전거가 한 대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응찰가가 8달러까지 올랐다. “저기 저 소년에게 9달러에 낙찰되었습니다!”라고 경매인이 결정했다. 경매인은 자기 주머니에서 8달러를 꺼낸 뒤 소년에게 1달러를 달라고 했다. 그 소년은 1센트, 5센트, 10센트, 25센트짜리 동전까지 털어서 준 뒤 자전거를 갖고 그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몇 발자국 가지 않아서 멈췄다. 자기의 새 물건을 조심스럽게 세워 놓은 다음, 그 소년은 돌아와서 감사의 마음으로 경매인의 목을 꼭 껴안은 뒤,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가 이 소년처럼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마지막으로 가졌던 게 언제입니까? 우리를 위해 다른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분명히 우리가 감사를 표해야 할 친절한 행위들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우리가 주일학교에서 자주 불렀던 노래가 있었는데, 우리의 영혼 깊숙한 곳까지 감사의 영이 와닿게 해주었습니다.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휩쓸어

잃은 것을 생각해 낙심할 때

네가 받은 복을 모두 세어라

주의 크신 복에 네가 놀라리 

(존슨 오트만 이세[1856∼1922],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휩쓸어”, 찬송가 142장)

우주 비행사인 고든 쿠퍼는 30여년 전 지구 궤도를 도는 동안에 다음과 같은 아름답고 간결한 감사 기도를 올렸습니다. “아버지시여, 특별히 제가 이렇게 비행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아름다운 곳에 있게 하시고,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이 모든 기묘하고 아름다운 만물을 볼 수 있게 해주신 특권에 감사드립니다.”(의회 기록, 제88차 의회의 첫번째 모임, 1963년, 7:9156 편, 109쪽)

우리는 “측량할 수 없는 축복에, 평가할 수 없는 은사에…  책과 음악과 그림과, 이 축복들을 누리게 해준 위대한 발명품들에, 어린이들의 웃음에,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고 인생의 기쁨을 높여 주는 모든 방법들에, 우리를 고양시켜 주는 모든 훌륭한 것들에 감사드립니다.” (“추수 감사 300년”, 에튜드 뮤직 매거진, 1945년 11월호, 614쪽) 

예언자 앨마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행하는 모든 일을 주와 의논할지니, 주께서 너희를 선으로 인도하시겠음이라. 네가 밤에 누울 때 주님과 함께 하면 잠자고 있을 동안 주께서 너를 살펴 주실 것이며, 아침에 일어나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로 너희 마음이 가득 차게 하라. 너희가 이렇게 할진대 마지막 날에 높이 들리우리라.”(앨마서 37:37)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해주고, 선행하도록 고취시켜 주고,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의 생활에 보다 가깝게 다가오게 해줄 수 있다고 믿는 세 가지 예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번째, 우리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시고, 희생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행복의 계획을 알게 해주시기 위해 애쓰신 부모님들에게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시내 산에서 우리의 가슴에 천둥 같은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애굽기 20:12)

저는 구세주께서 십자가 위에서 어머니에 대하여 하신 표현보다 더 훌륭한 표현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한복음 19:26, 27)

두 번째, 우리는 배우고자 하는 소망을 키워주고, 명예롭게 살겠다는 결심을 마음속에 갖도록 해준 학교나 교회의 어떤 선생님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었으며, 그래서 감사하게 여기는 사람들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에 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한 사람이 자기에게 영국의 계관 시인 테니슨을 알게 해준 고등학교 여선생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는 감사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얼마 안돼, 부드럽게 흘려 쓴 글씨체의 선생님 답장이 왔습니다.

“사랑하는 윌리에게,

“윌리 군의 편지가 내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몰라요. 나는 조그만 방에서 혼자 지내고, 요리도 혼자 해먹어야 하는, 이제는 마지막 잎새처럼 외로이 사는 80대의 노인이 되어 있군요. 윌리 군은 내가 50년 동안 교직 생활을 해왔는데, 감사의 편지를 받은 것은 윌리 군에게서가 처음이라는 걸 알면 좀 재밌어 하겠지요. 우울하고 추운 어느 아침에 날아 온 그 편지는 오랫동안 웃음을 잃었던 내게 행복을 주었어요.”

과거나 현재나, 자신의 너무나 많은 부분을 주어서, 우리가 스스로를 위해 너무나 많이 취할 수 있게 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우리는 영원한 감사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세 번째, 자신의 동료들에게 “감사하다”는 표현을 해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십대 시절은 부모님 뿐 아니라 십대인 자신에게도 어려운 시기일 수 있습니다. 이 시기는 소년, 소녀들의 인생에서 힘든 시기입니다. 소년들은 축구팀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소녀들은 미의 여왕이 되기를 바랍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태복음 22:14)라는 말씀이 여기에 잘 맞습니다.

여러분에게 1년 여전 솔트레이크 근처의 머레이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로, 모두가 승자이고, 패자는 한 명도 없었던 현대판 기적 이야기를 들려 드릴까 합니다.

어느 신문 기사에서 이 사건이 집중 부각되었습니다. “참된 정신을 보여 준 동문회: 학생들이 장애 여학생 2명을 머레이의 여왕으로 선발”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는데, 기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테드와 러스 아이어 부부는 부모로서 할 일을 했다. 그들의 딸인 셀리가 머레이 고등학교 동문회 여왕 선발 결선까지 올라갔을 때, 그들은 딸에게 뽑히지 못할 경우 멋지게 승복하라고 조언했다. 그들은 열 명의 후보 가운데 단 한 명만이 여왕으로 선발된다고 설명해 주었다 …  목요일 저녁에 학교 체육관에서 학생회 임원들이 학교의 동문 여왕에게 왕관을 수여할 때, 셀리 아이어는 대신 소속감을 경험했다. 선천성 다운 증후군을 가진 3학년생이 동료 학생들로부터 동문 여왕에 선발된 것이다 … 후보자들이 소개되자, 테드 아이어가 딸을 데리고 체육관으로 입장했을 때, 체육관에는 고막이 터질 듯한 환호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기립한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다 … ”

셀리를 뒤따라 나온 학생들에게도 기립 박수가 이어졌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에이프럴 퍼션은 열살 때 겪은 뇌출혈로 신체 및 정신 장애를 갖고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기립 박수가 멈추자, 이 학교의 글로 메릴 교감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저녁 …  학생들은 내적인 아름다움에 투표했습니다 …’ 감격한 부모와 교직원들과 학생들은 거침 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무 행복해요. 후보들이 나오는 걸 보자 눈물이 나왔어요. 머레이 고등학교가 정말 멋진 일을 해냈다고 생각해요.”(미주리 코르테즈, 데져렛 뉴스, 1997년 9월 26일, A1, A7)

그날 저녁을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만들어 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드립니다. 스코틀랜드 시인, 제임스 배리의 다음 싯구가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인생의 12월에 6월의 장미를 만끽할 수 있도록, 하나님은 우리에게 추억을 주셨다네.”

금년 8월에, 솔트레이크 군에는 한 가지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방 및 전국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던 내용입니다. 아주 어리고, 아주 용감하며, 아주 사랑스러운 소녀 다섯 명이 숨바꼭질 놀이를 하다가 어느 부모님의 차 트렁크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만 트렁크 뚜껑이 닫히는 바람에, 꼼짝도 못하게 된 아이들이 열탈진으로 모두 사망하고 만 사고였습니다.

지역 사회 전체가 엘리샤, 애쉴리, 맥컬, 오드리, 재샤의 죽음에 온정 있고 사려 깊은 태도를 보여 주었습니다. 꽃과 음식이 답지하고, 전화와 방문과 기도가 이어졌습니다. 

그 참혹한 사건이 일어난 다음 주 일요일에, 사고 현장인 스미스 일가의 집 앞으로 애도의 차량 행렬이 길게 꼬리를 물고 천천히 지나갔습니다. 저희 부부도 이렇게 애도의 뜻을 표하는 사람들 속에 있고 싶었습니다. 차를 모는 동안, 우리는 성지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길을 따라 정말로 천천히 움직여 나갔습니다. “절대 감속, 어린이 놀이터”라는 교통 표지판이 보일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눈에는 눈물이 넘쳐 흘렀으며, 마음에서 연민의 정이 넘쳐 나왔습니다.

전 날 저녁뿐 아니라 장례식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관 앞을 지나 비통해 하는 부모와 조부모들에게 위로를 표했습니다. 세 가족 가운데 두 가족은 그 사고로 자녀를 모두 잃어 버렸습니다.

사망이 침입해 오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적군처럼 인생의 향연 중간에 습격하여 인생의 빛과 유쾌함을 앗아가 버리기도 하고, 힘들게 걸음을 옮기는 노인에게도 찾아오고, 아직 인생의 절반도 살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소환장을 보내며, 어린 아이의 웃음을 잠재워 버리기도 합니다.

그 어린 다섯 천사의 장례식에서 저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쉽게 하는 말에서 지워 버려야 할 한 마디가 있습니다. ‘뭣뭣 하기만 한다면’이라는 말입니다. 비생산적이면서, 치유와 평안의 영에 전혀 도움이 안되는 말입니다. 오히려, 잠언의 다음 말씀을 떠올리십시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5, 6)”

관이 닫히기 전에, 저는 숨진 어린이마다 누군가가 선물한 예쁜 인형을 하나씩 안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시인인 유진 필드의 시가 떠올랐습니다.

먼지에 덮인 조그만 장난감 강아지

충실하고 건장하게 서 있다

발갛게 녹이 슬은 병정

소총을 든 채 서 있다

조그만 장난감 강아지가 새 것이었을 때

그 병정이 행진을 했을 때

그 때 리틀 보이 블루가 장난감에 입맞추고

그곳에 두었었다

“자, 내가 올 때까지 가면 안돼”

“그리고, 시끄럽게 하지 마”

그는 바퀴 달린 침대로 아장아장 걸어가

예쁜 장난감 꿈을 꾸었다

꿈 속에서 천사의 노래 소리가

리틀 보이 블루를 깨웠다

해가 바뀌고 또 해가 바뀌었지만

조그만 장난감 친구들은 진실하다!

리틀 보이 블루에게 충실한 이 장난감 친구들,

바로 옛 그 자리에서 

조그만 손길을 기다리며 조그만 얼굴의

미소를 기다리며 서 있다

장난감 친구들은, 그 조그만 의자의 먼지 속에서

이 긴 세월을 기다리면서,

입맞춤하고 간 리틀 보이 블루가

어찌 된 것일까 생각하고 있다

(성도의 벗, 1976년 2월호, 15-16쪽)

그 어린 장난감 강아지와 장난감 병정은 궁금해 할지 몰라도, 한없는 사랑의 하나님은 비통에 빠진 이들이 궁금해 하도록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분을 찾도록 영감을 주시며, 여러분을 안아 주십니다. 예수님은 비통에 빠진 모든 이에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한복음 14:18)

참된 평안의 원천은 단 하나입니다. 저는 참새가 땅에 떨어지는 것까지 아시는 주님이 잠시일지라도 소중한 자녀들과 떠나 있게 된 분들을 연민의 마음으로 내려다 보고 계신다고 확신합니다. 치유와 평안의 은사는 절대 필요한 것이며, 예수님은 그분의 속죄를 통해 모두에게 그러한 것들을 주셨습니다.

예언자 요셉 스미스는 다음의 영감에 찬 계시와 위로의 말씀을 했습니다. “또한 나는 책임을 질 연령에 이르기 전에 죽는 모든 어린 아이가 하늘의 해의 왕국에서 구원 받음을 보았느니라.”(교리와 성약 137:10) “이 세상에서 자녀가 성인이 되도록 기르는 특권과 기쁨과 만족감을 빼앗긴 어머니[와 아버지]는 부활 후에 이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기쁨과 만족과 특권을 누려 그의 자녀가 완전히 성숙한 영의 모습으로 자란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복음 교리, 412쪽) 비통해 하는 사람들과, 사랑했던 소중한 자녀들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바로 이 말씀이 길르앗의 유향과 같습니다.

시편의 저자는 이러한 확신을 주었습니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편 30:5)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의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한복음 14:27, 2, 3)

여러분이나 저나, 진지하게 구하는 모든 이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니며, 아들이신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도 우리를 살리기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해주신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 깊이 감사 드립니다. 주님의 성전이 많은 나라의 땅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거룩한 성약들이 맺어집니다. 해의 영광이 순종하는 자를 기다립니다. 가족이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모든 이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태복음 11:28, 29)

우리 모두 감사를 표할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겸손히 간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