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순결

하나님이 주신 다른 사람의 육신을, 주님의 허락도 없이 범하는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의 영혼 자체를 학대하는 것이며, 생명의 “열쇠”, 즉 생명의 주요 목적과 절차를 학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주변에 부도덕의 유혹이 늘어나면서 저는 개인적인 순결의 원리에 관해서나 결혼 전의 온전한 순결의 의무, 또는 결혼 후의 충실함에 대해서 혼동하는 젊은이들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항하여 도덕적인 순결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높은 표준을 가르치도록 부모님들이 준비하시는 것에 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주제의 경건성 때문에 저는 제가 좀더 솔직하게 성신의 인도를 받을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

이 주제에 접근하기 위해서 저는 실망스러운 통계 자료나 놀라운 염문들을 보여 주는 사회의 병폐에 대한 기사를 인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또한 형제와 자매들이 데이트할 때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같은 것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아주 개인적인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질문해 볼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한 답변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순결해야 합니까? 이 문제는 하나님에게 이렇게 중요할까요? 왜 교회는 이것에 관해 그렇게 엄격할까요? 세상에 개방되어 있는 매력적인 것들이 어떻게 경건하고도 중요해질 수 있을까요?

저는 교육적 가치가 있는 긴 문명의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먼저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윌과 애리얼 듀랜트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습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지식이 많은 사람일지라도 역사에서 배운 교훈적인 지혜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호르몬이 끓고 있는 젊은이들은 왜 그들에게 완전한 성적 부담에 대한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는지 의문을 가질 것입니다. 그리고 도덕이나 관습, 또는 법률을 인식하지 않으면, 그들은 성이 많은 제한 속에서 보관되어야 하는 불의 강이라는 사실을 깨닫기도 전에 인생을 망칠지 모를 일이며, 개인이나 집단 모두 혼돈 속에서 성을 낭비하게 될 것입니다.”(윌과 애리얼 듀랜트, 역사의 교훈[뉴욕” 사이먼과 슈스터, 1968년], 35∼36쪽)

잠언의 저자는 비슷한 경전의 성구를 주었습니다. “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야 어찌 그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야 어찌 그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간음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잠언 6:27∼28, 32∼33)

왜 성적 관계의 문제가 항상 불에 비유되고, 욕망은 거센 불꽃에 비유되어질 만큼 심각할까요? 그 곳에는 어떤 사람의 영혼을 떠나게 하는 고통스러운 열기가 있습니다. 그 욕망의 불꽃을 자제하지 않으면 그 문제로 인해 온 세상을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앨마는 그의 아들 코리앤톤에게 성적인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증한 일이라.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거나 성신을 거스르는 일 다음으로 가장 가증한 일임을 네가 알지 못하느냐?”(앨마서 39:5)라고 경고했습니다.

말일성도의 교리에서는, 성적인 죄를 하나님 보시기에 살인 다음가는 죄악이라고 정의합니다. 육체적인 욕망을 그렇게 정의함으로써, 주님은 그분의 계획에서 모든 인간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요? 저는 여러분에게 그분은 분명하게 그 인생의 계획 자체에 관해 평가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려 드립니다. 도덕성에 관한 그분의 가장 큰 걱정은 사람이 어떻게 세상으로 와서 어떻게 가느냐는 것입니다. 그분은 이런 문제들에 관해 매우 엄격한 제한을 두셨습니다.

다행히도,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경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분명히 책임을 지는 것 같습니다. 살인과 관련된 범죄는 아주 참혹하게 보입니다. 사실 당연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생명을 주는 문제에 있어서는, 때때로 사람들이 거의 범죄에 가까우리만큼 무책임한 면을 보입니다. 이 문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왜 그토록 중요한 문제가 되는지, 그 이유 세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번째는, 바로 인간에게 계시되고, 회복된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영체와 육체로 되어 있”(교리와 성약 88:15)으며, 영과 육이 분리될 때에 사람은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없”(교리와 성약 93:34)다는 사실은 이 경륜의 시대에 회복된 “간결하고 귀중한” 진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것이 바로, 육신을 얻는 것이 왜 그토록 가장 중요한 우선 순위에 속하는지, 어떤 형태든 그 죄가 왜 그토록 심각한 문제가 되는지(즉 그 죄는 궁극적으로 육적인 사망과 영적인 사망을 모두 초래하는 죄이기 때문에), 또 육신의 부활이 그리스도의 위대한 속죄에서 왜 중심이 되는지를 설명해 주는 이유가 됩니다.

육신은 본질적으로 영의 일부입니다. 이 특별하고 매우 중요한 말일성도의 교리는 성적인 죄가 왜 그토록 심각한지를 부각시켜 줍니다. 하나님이 주신 다른 사람의 육신을, 주님의 허락도 없이 범하는 사람은 바로 그 사람의 영혼 자체를 학대하는 것이며, 보이드 케이 패커 사도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생명의 “열쇠”(대회 보고, 1972년 4월, 139쪽), 즉 생명의 주요 목적과 절차를 학대하는 것임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학대하는 것을 뜻하는, 다른 사람의 육신을 학대하는 것과 관련하여, 그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고 영생의 은사를 누릴 수 있게 해준 그리스도의 속죄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의의 아들을 조롱하면, 정오의 태양보다 훨씬 더 뜨겁고 거룩한 세상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곳에서는 불에 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게 누구를 다치게 한단 말이에요? 왜 자유 좀 누리면 안되죠?  지금 잘못을 저질러도 나중에 회개하면 되잖아요.”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정말로 어리석고 부끄러움 모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죄의 값도 치르지 않고 예수님을 다시 못 박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 이와 비슷한 어떤 일도 하지 말라” 바울은 교리와 성약에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왜 그럴까요? 헤아릴 수 없는 영과 육의 고통은 이 세상의 구세주에 의해 이겨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그분에게 그에 대한 빚을 지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분에게 모든 것을 빚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노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 알지 못하느냐” 성적인 죄를 짓게 되면 영과 육은 큰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둘째로, 인간의 애정 행위는 부부를 위해 예비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완전한 결합의 궁극적인 상징, 곧 하나님께서 제정하시고 규정 지으신 완전한 상태이며 결합이기 때문입니다. 에덴 동산 시대 때부터,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마음과 소망과 삶과 사랑과 가족과 미래와 모든 것들을 완전히 융합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아담은 이브에 대해, 그녀가 그의 뼈 중에 뼈이며, 살 중에 살이라고 했으며, 그들은 “한 몸”을 이루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완전한 결합으로서, 우리는 이것을 영원한 성약으로 인도되는 “인봉”이라고 말합니다. 예언자 요셉 스미스는 한때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결합됨으로써 그러한 거룩한 뼈가 될 수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완전한 결합, 즉 남자와 여자 간의 양보할 수 없는 헌신은 결혼 성약을 통해 가질 수 있는 친밀함과 영원성이 있어야만 가능해집니다. 물론 그들이 가진 모든 것, 즉 마음과 생각, 모든 날들과 모든 꿈들을 나누겠다는 거룩한 약속과 맹약이 함께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마치 하나인 척 하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약속을 한 척 하고, 거짓 결합으로 육적인 상징과 육적인 애정 행위를 나누지만, 완전한 의무를 의미하는 다른 모든 면을 회피하려고 하고, 그만두려고 하고, 끊으려고 하는, 도덕적인 모순을 구분할 수 있습니까?

인간의 애정 행위 문제에 관한 한, 여러분은 기다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모든 것을 줄 수 있을 때까지는 기다려야 하며, 합법적으로 결혼하기 전에는 모든 것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것이 아닌 것(“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이라는 말을 기억하십시오.)을 부정하게 주고, 자신의 전부를 줄 수 없는 때에 일부를 주는 것은 러시안 룰렛 게임처럼, 여러분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늘의 승낙 없이 육체적인 만족을 추구한다면, 여러분은 미래의 진정한 사랑에 대한 정성어린 애정 능력과 애정 행위에 대한 열의 모두를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영적, 정신적 피해에 대해 심각한 모험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사랑과 진정한 결합의 순간이 오면, 그때서야 고이 간직했어야 할 것을 허비해 버린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알게 되고, 오직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서만 여러분이 너무나 쉽게 조금씩 던져 버린 덕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결혼식날, 여러분이 영원한 동반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가장 깨끗하고 순수하며 순수함의 가치를 되돌릴 수 있는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셋째, 육체적인 애정 행위는 남편과 아내 사이의 상징적인 결합, 즉 영혼의 결합일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관계의 상징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불사 불멸체이시고 완전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필멸체이며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필멸의 상태에서도 그분과 영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추구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권세에서 비롯된 은총과 권위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러한 특별한 순간에는 주님의 집 안에서 결혼의 단 앞에 무릎 꿇는 것, 새로 태어난 아기를 축복하는 것, 교회의 새로운 회원을 침례 주고 확인하는 것, 주님의 만찬의 상징물들을 취하는 것 등이 포함되니다.

이 때가 바로 문자 그대로 우리의 의지와 주님의 의지가 결합하고, 우리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 결합하여, 장막을 통한 교통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그분의 신성을 알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신성의 일부를 우리의 것으로 취할 수 있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모든 남자와 여자에게 주어지는 그 신성의 한 가지 면은 인간의 육신을 창조하는 주님의 권세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경이로우며, 유전적으로나 영적으로 인간 역사상 그 전례가 없었고, 영원을 두고 결코 모방해 낼 수 없는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권세인 것입니다. 눈과 귀, 손가락, 발가락,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장엄한 미래를 가진 자녀를 낳을 수 있는 바로 그 권세인 것입니다.

아마 신생아를 안아 본 부모만이 제가 말씀드리는 그 경이로움을 이해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셨던 호칭이 바로 아버지이라는 사실을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창조하는 것, 특별히 당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는 일을 그분은 가장 소중히 여기십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그 신성을 어느 정도 받았지만, 가장 중대하고 거룩한 제한 또한 받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통제는 바로 자기 통제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신성한 권세를 존중함으로써 가능한 자기 통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왜 개인적인 순결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왜 대관장단과 십이사도 평의회가 “생명을 창조하는 방법을 하나님께서 정하여 주셨”으며 “출산의 신성한 능력은 남편과 아내로서 합법적으로 결혼한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만 사용되어야 한다”고 선포했는지를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속아서 파멸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러한 권세를 통제하지 않고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미래는 불태워질 것이며, 여러분의 생은 화염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범법을 한 바로 그 날에 죄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분명히 충분하게 받을 것입니다. 참된 회개와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없는 한, 도덕적으로 청결하지 못한 사람은, 언젠가, 또 어디에선가, 나사로로 하여금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 고민하나이다”(누가복음 16:24)라고 기도했던 부자처럼 기도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인간은 영과 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육신이 무덤에서 일어나 영과 결합하여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는 거룩한 계시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육신은 순결하고 거룩하게 지켜져야 합니다. 정직하게 일하다가 손이 더럽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진리를 지키고 의를 위해 싸우다가 생길 수 있는 상처를 겁내지 마십시오. 다만 영적으로 흉하게 만드는 상처와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해서 생기는 상처, 그리고 가지 말았어야 할 곳에 가서 생기는 상처만큼은 조심하십시오. 그릇된 일을 위해서 싸우다가 상처를 입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여러분 중에 그런 부상을 당한 사람이 있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을 통해 가능해진 회개로써 평화를 얻고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중대한 문제에 있어서는, 회개의 길이 쉽게 시작되거나, 고통 없이 지나갈 수 있는 유형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의 구세주라면 기꺼이 모든 사람을 돕기 위해 그런 길을 걸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이 흔들릴 때 여러분을 강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가장 어두운 것 같은 때에 여러분에게 빛이 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손을 붙잡아 주실 것이며, 소망이 여러분 곁을 떠나 버린 것처럼 보일 때에 여러분의 소망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참으로 완전한 용서를 바라고 그렇게 되기 위한 절차를 밟는 모든 사람에게, 청결케 하고 치유해 주는 권세를 가지신 그분의 연민과 사랑이 한없이 주어질 것입니다.

위대한 생의 계획과, 신성의 권세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와 용서와 속죄 및 도덕적인 청결과 관련하여 심오한 의미를 갖는 모든 것에 대해 간증 드립니다. 우리는 육신과 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간증 드립니다. 청소년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순결한 생활을 하는 것을 소중히 여길 수 있게 되기를 순결 자체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