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마음

심도 있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봉사하려는 태도는 우리의 감사하는 마음을 그대로 투영하는 것입니다.

어린 소년 시절, 작은 가족 농장에서의 생활은 천국이었습니다. 지붕을 이을 널이 없어 그대로 방치해 둔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허술한 화장실은 길가에 나 있어서 가려면 주위를 잘 살펴보아야 했습니다. 제 닳아빠진 셔츠에는 단추보다 단추 구멍이 훨씬 많이 나 있기가 일쑤였습니다. 토요일 밤이면 따뜻한 난로 앞에서 목욕을 했는데, 목욕물과 공기 사이의 커다란 온도차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나마 그것도 우리에게는 사치였습니다. 

그러다가 변화가 생겨, 저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옷을 입고, 온갖 종류의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멋진 집에 살면서 새 차를 몰고 다녔습니다. 제 또래의 많은 아이들은 학교에 가기 전에 일찍 일어나 허드렛일을 하고 저녁때면 집에 돌아가 다시 그 일을 되풀이해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인기도 있고 자신만만했으나, 저는 내성적이고 수줍어하는 성격을 갖게 되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한없이 많아 보이는 그들의 복을 제가 받은 적은 축복과 비교하는 일에 몰두하면서 제가 그 축복 속에서 얼마나 행복해 했던가를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겸손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 되자, 현실을 왜곡하게 되고, 감사하는 마음을 저버리게 되었습니다.  더 많은 것을 받고자 하는 기대감은 우리가 갖고 있는 가득 넘친 그릇을 빈 그릇으로 보이게 합니다. 감사는 여러 얼굴을 하고 있으며 갖가지 모습을 취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하여 주님께 감사하지 않게 되면 곧바로 우리는 이기적인 행위를 하게 됩니다.

구세주께서는 언제나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었으나, 그에 대해 사의를 표명하는 사람을 별로 만나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 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누가복음 17:12∼17)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하고 물으신 구세주의 질문은 진지한 성찰을 필요로 하는 대목입니다. 힝클리 대관장님은 지난 4월 연차 대회의 개회사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그래서 우리 모두 주님의 일을 이루기에 가장 영광스러운 이 시대에 주님께서 주신 은사인 훌륭한 교리와 의식을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경축하며 함께 기뻐합시다. 우리 모두 이 가장 고귀한 은사와 특권에 대해 감사하며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로서 우리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합시다,”(성도의 벗, 1998년 7월호, 6쪽)

우리들의 예언자께서 말씀하신 모든 “고귀한 은사와 특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받는 풍성한 축복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보다 중요시해야 할 것은, 감사함을 표시하는 태도에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주님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로도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하나님의 분노를 자아내게 하지 못하되 다만 만사가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음을 고백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지 아니하면”(교리와 성약 59:21)

감사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모든 사과가 반짝인다고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사과를 윤이 나게 닦는 과정에서 생긴 흠집만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세 타령에 마음이 팔려 주어지는 축복에 무감각해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 일에 마음이 팔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기쁨과 행복은 감사하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와츠 자매와 저는 최근 3년 간 다른 나라에서 지내며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만일 세속적인 재물의 소유가 곧 행복이라고 한다면, 이들 성도들의 대다수는 불행한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실제로는 그와 정반대로, 감사하는 마음이 넘쳐 났고, 그 결과 기쁨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별다른 혜택을 누리지 못한 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면서도, 그들이 즐겁게 생활하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습니다. 즐거워하는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 원리에 따라 생활함으로써 얻는 축복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한 충실한 지방부장은 자전거를 갖게 되어 자신의 부름을 보다 용이하게 수행하게 된 것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는 페달을 밟으면 밟을수록 더욱 행복해 하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에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만약에 별로 감사하는 마음을 느끼지 못한다면, 좀더 빠르게 페달을 밟아 본다면 어떻겠습니까? 심도 있게 그리고 자발적으로 봉사하려는 태도는 우리의 감사하는 마음을 그대로 투영하는 것입니다.

제임즈 이 탈매지 장로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감사는 겸손과 쌍둥이 자매요; 교만은 이 둘의 적입니다….” (일요일 밤 말씀, 재판, (1931), 483 쪽) 제임즈 이 파우스트 부대관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에서 위대함이 시작됩니다.”(감사는 구원의 원리임, 성도의 벗, 1990년 5월호, 86 쪽) 우리는 시험을 받을 때에도 감사하는 마음, 곧 계명을 지키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려는 자들을 위해 예비해 두신 축복과 은사에 대해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앞날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이웃으로 지내면서 우리 집에서 복음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던 한 영원한 친구가 사랑하는 배우자를 잃은 가운데 연단의 불길을 느꼈습니다. 그가 최근에 복음과 성전 성약과 영원한 결혼에 대해 형용할 수 없는 감사를 느낀다고 한 말이 제 마음속에 깊이 아로새겨졌습니다. 그의 사랑스런 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 이러한 지식이 그들이 교회에 들어오기 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위안을 가져다주었습니다.`‘우리 가족에게 이 위대하고 영원한 은사를 나눠 준 자네에게 어떻게 내 감사하는 마음을 다 전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 그의 말에 덧붙여, 우리 모두에게 “고귀한 은사와 특권”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제 자신의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는 자는 영화롭게 될 것이요, 이 세상의 것이 저에게 더하여 지리니 참으로 백배 이상 더해지리라.”(교리와 성약 78:19) 하나님은 관대하게 주시는 분입니다. 저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계심을 증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