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같은 성품을 키움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영성을 얻게 될 것이며, 신앙과 소망과 사랑이 얼마나 우리 생활의 중심 요소가 되느냐에 기초를 두고 예수 그리스도와 보다 조화를 이루는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휴가철이나 생일같이 중요한 날들이 있으면 달력에 표시를 해두곤 합니다. 해마다 생기는 그러한 날들은 우리의 생활에 어떤 발전이 있는지를 측정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 가운데 신정은 반성과 결심을 하는 시간이 됩니다.

영적인 거듭남의 기념일인 침례일은 매년 특별히 기억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날입니다. 성전 인봉일도 특별한 기념일로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그 의식을 통해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들과 영원히 하나로 매인 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합당성에 관한 접견, 특히 연례 성전 추천서 접견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광스러운 청지기 직분을 잘 수행했는지, 그 발전 상황을 점검해 보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영혼을 돌보고 보살펴야 합니다. 이러한 기회에, 우리는 성약을 새롭게 하고, 결심을 확고히 하며, 영원한 목표를 세웁니다.

몇몇 중요한 사건들은 평생에 한 번만 일어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채 15개월도 안 되어서, 정확히 말하면 454일 후면, 달력에서 연도를 나타내는 숫자 네 개가 모두 동시에 바뀌는 해의 신정을 맞게 될 것입니다. 일반 여론 조사를 보면 이 특별한 달력의 변화가 “사람들의 의식에 갈수록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조사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순간을 “매우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고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한 전문가는 1천년 단위로 달력이 변화하는 이 사건은 “사람들의 생활에 심오한 이정표가 되고, 멈춰서 새로 시작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전망, NFO 리서치 사, 1998년 여름호) 

  • 이 생에서의 구세주의 성역

구세주께서 육신을 입고 태어나신 것은 거의 2천년 전에 일어났던 감히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때를 전후로 하여 달력의 연도를 정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회개의 복음을 가르치고 교회를 조직하셨으며,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해 속죄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그분은 부활하심으로써 모든 사람이 죽음을 이기고 회개함으로써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그분의 가르침들은 인간 행위의 표준을 세웠으며,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 구세주의 재림

아마도 이 시대의 고난을 피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구세주의 재림이 임박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주님께서는 세상에 승리의 재림을 하실 때에 관하여 가장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태복음 24:36) 그분은 감란산에서 이 진리를 가르치셨으며, 예언자 요셉 스미스를 통한 현대의 계시에서 “그 날과 그 시를 아는 자는 한 사람도 없나니” (교리와 성약 49:7)라는 말로 그 가르침을 반복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 친히 지상을 다스리”(신앙개조 제10조)실 때가 올 것입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교회의 장로들에게 “나의 포도원에서 마지막으로 일하라. 최후로 땅의 주민에게 외치라 … 이는 나의 종의 입으로써 내가 말한 바 위대한 복천년이 임할 것임이라.” (교리와 성약 43:28, 30)라고 말씀하셨던 1831년보다는 지금이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오실 날에 더 가까운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구세주의 재림의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지만, 우리가 말일에 살고 있으며, 절정의 시기에 구세주께서 육신을 입고 성역을 베푸시던 때보다는 재림에 더 가까운 시기를 살고 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순종하는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생은 유수와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분을 만나기 위한 준비로써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말일성도로서, “우리는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 무엇이든지 유덕하고 사랑할 만하고 듣기 좋으며 칭찬할 만한 일이 있으면 우리는 이것들을 구하여 마지”(신앙개조 제13조)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나아가게 하는 어떤 것을 믿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소망합니까? 우리는 어떤 유덕하고 사랑할 만하고 칭찬할 만한 것을 구해야 합니까? 저는 우리가 구세주와 같은 성품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 신앙, 소망, 사랑

사도 바울의 다음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린도전서 13:13) 이 거룩한 성품이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뿌리내려 어떤 행동에서든지 우리를 인도하게 해야 합니다. 모로나이서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 중에 으뜸이 되는 사랑을 좇으라 … 누구든지 마지막 날에 사랑을 지닌 것으로 인정을 받는 자에게 모든 것이 잘되리로다”(모로나이서 7:46-47) 사랑은 신앙과 소망의 외적인 표현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찾고 얻으면, 해의 영광의 성품의 기초가 되는 이 세 요소가 이 생과 장막 너머 다음 세상에서까지 우리와 함께할 것입니다. “이 생애에서 너희 육신을 다스린 그 영이 영원한 세상에서도 너희 몸을 다스리리라.” (앨마서 34:34)라는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이러한 유덕하고, 사랑할 만하고, 칭찬할 만한 성품들을 강화시키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을 더욱 기울이는 일을 단 하루라도 늦춰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지키면, 신앙과 소망과 사랑이 우리에게 거할 것입니다. 이러한 덕성이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처럼 [우리의] 영육을 적[실]”(교리와 성약 121:45) 것이므로 우리는 주님이요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흠 없고 점 없는”(베드로전서 1:19) 상태로 자신 있게 설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저는 경전을 읽고 상고할 때마다, 우리 내부에 신앙과 소망과 사랑을 키우는 일이 한 걸음 한 걸음 행해야 할 과정임을 느낍니다. 신앙은 소망을 낳고, 이 둘은 사랑을 키웁니다. 모로나이서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신앙이 있어야 하리니, 신앙이 있으면 소망이 반드시 있을 것이요 소망이 있을진대 사랑이 또한 있을 것이라.”(모로나이서 10:20) 이 세 가지 덕성은 처음에는 차례로 얻어지는 것이지만, 일단 얻기만 하면 상호 의존 관계에 있게 됩니다. 하나라도 다른 요소를 갖추지 못하고서는 모두 불완전한 것입니다. 이들은 서로 지지하고 강화시킵니다. 모로나이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너희에게 사랑이 없으면 하나님 나라에서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요, 또 너희에게 신앙이 없어도 하나님 나라에서 구원 받지 못할 것이요 소망이 없어도 구원 받지 못하느니라.”(모로나이서 10:21)

이것들은 우리가 구하는 유덕하고 사랑할 만하고 칭찬할 만한 특성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한다]”(고린도전서 13:8)고 한 바울의 가르침을 잘 압니다. 분명히 우리는 생활에서 영적으로 시들지 않는 힘을 필요로 합니다. 모로나이는 다음과 같은 계시를 기록했습니다. “신앙, 소망, 사랑이 모든 의의 근원인 내게로 이르게 함을 저들에게 보이리라.”(이더서 12:28)

오늘날 지상에 회복된 주님의 교회인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세주께 인도하며, 우리가 앞서 이야기한 거룩한 성품들을 키우고, 배양하며, 강화시킬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사실, 주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그분을 섬기는 데 필요한 자격들을 밝혀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겸손하며 사랑이 가득하며 신앙, 소망, 자비의 덕을 지니...는 자 아니면 이 사업을 도울 수 없느니라.”(교리와 성약 12:8)

모로나이는 “사랑은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이라”(모로나이서 7:47)고 가르치고, “마음을 기울여 하나님께 간구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참된 마음으로 따르는 자에게 허가하시는 이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모로나이서 7:48)도록 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사랑은 그것을 구하는 자, 곧 그것은 진실되게 간구하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자들에게만 주어진다는 점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 순수한 사랑으로 가득 찰 수 있게 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복음의 첫번째 원리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제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신앙개조 제4조)을 가져야 합니다.

  • 신앙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입니다.]”(히브리서 11 :1)  “신앙이란 완전히 아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신앙을 가지면 눈에 보이지 않는 참된 것들을 바라[게 됩니다.]”(앨마서 32 :21) 우리 말일성도들에게는 충만한 복음이 있기 때문에 강한 신앙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연구하고 상고하고 기도한다면, 보이지 않지만 참된 하나님의 것들에 대한 신앙이 커집니다. “아주 작은 신앙”(앨마서 32 :27)만을 갖고 시작한다고 할지라도, 또 “비록 [우리]가 믿겠다는 의욕만을 갖는다 할지라도”(앨마서 32:28∼43 참조) 보다 더 주의를 기울이면, 신앙의 작은 씨앗이 자라서 튼튼하고 충실한 간증의 나무가 될 수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우리가 회개하게 해줍니다. 주님의 속죄로 인해 가능케 된 속죄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죄와 약점과 잘못을 용서 받음으로써 오는 고요한 평안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영적인 거듭남을 믿기에, 우리는 침례를 받고, 성신의 은사를 받습니다. 

우리는 순종이 하나님과 같이 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구세주의 부활 덕분에, 우리는 죽음으로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필멸의 생을 먼저 떠났던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쁘게 다시 만나고 껴안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 소망

모로나이는 당시의 성도들에게 “너희가 어떠한 소망을 가져야 하겠느냐?”라고 묻고,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속죄와 그의 부활의 권세를 통하여 영생으로 세우심을 받으리라는 소망을 가져야 할 것이니, 이는 약속하신 바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들의 신앙으로 말미암음이라.”(모로나이서 7:41) 이더서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을진대 더욱 아름다운 처소, 곧 하나님의 우편에 거하리라는 소망을 가지리라 하였으며, 이 소망이야말로 신앙에서 비롯하여 인간의 영육에 닻이 되어”(이더서 12:4)

역경의 바람이 몰아쳐도, 아버지께서 우리를 소망의 닻을 내리고 안전히 머물 수 있게 해주십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가두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14:18)라고 약속하셨으며, 주님은 “[우리]의 고난을 성별하사 [우리]의 유익이 되게 하실 것”(니파이이서 2:2)입니다. 시련이 너무 버거운 때에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역대하 20:15)라고 하신 주님의 분명한 약속에서 힘과 소망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사랑

일단 신앙이 자라서 확고하고 굳건한 간증이 되어, 하나님 아버지의 행복의 계획에 대한 소망을 주게 되고, 우리가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의 자녀이며,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속죄하도록 아들을 보내 주셨다는 것을 신앙의 눈으로 보고 나면, 우리는 마음에 큰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앨마서 5:14 참조) 우리는 “구속의 사랑을 노래하겠다는 느낌”(앨마서 5:26)을 갖게 되며, 우리 마음에는 사랑이 넘쳐흐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느것보다도 저희가 얻고자 하는 것[이며] … 사람을 가장 기쁘게 하는 것”(니파이일서 11:22-23)임을 알게 되면, 그 기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바랍니다. 그들을 위해 봉사하고 그들을 축복하기 바랍니다.

  • 가족

가족-세상에 전하는 선언문에서는 가족의 성스러움을 분명하게 설명하면서, “남편과 아내는 배우자와 자녀들을 사랑하고 돌보아야 할 엄숙한 책임을 지니고 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자녀들에게는 어려서부터 성전의 거룩함에 관해서,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성전에 가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마련해 놓고 계신 축복들을 누리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 거룩한 목표의 모든 면을 교회에서도 가르치고 있으며, 자녀들은 결국 때가 되면 그것이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 성전

신앙과 소망과 사랑에 대한 이상은 거룩한 성전에서 가장 분명하게 보입니다. 우리는 그 성전에서 인생의 목적을 배우고, 주님과 거룩한 성약을 맺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제자들처럼 보다 굳건하게 헌신하고, 온 세대에 걸쳐 영원히 가족을 인봉하게 됩니다. 성전에서 자신의 엔다우먼트를 받고 자주 가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거룩한 의식을 받게 되면, 우리의 신앙이 커지고, 소망이 강해지며, 사랑이 깊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엔다우먼트를 받을 때, 주님께서 자녀들을 위해 가지신 계획을 이해하게 되고, 각자 자신의 내부에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의 거룩한 잠재력이 있음을 인식하게 되며, 성약을 끝까지 충실하게 지킬 수 있기를 바라는 소망과 그렇게 하리라는 믿음으로 받습니다.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성전 의식을 받는 것은 바로 사랑을 보이는 행동이며, 이 생에서 사는 동안 받지 못한 핵심적인 축복들을 앞서 가신 분들이 얻을 수 있게 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그 분들이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을 그 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습니다.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은 지난 4월에 전례 없이 많은 수의 새로운 성전을 발표하시면서 “성전 의식은 교회가 제공하는 최고의 축복입니다.”(성도의 벗, 1998년 7월호, 88쪽)라고 선포하신 바 있습니다. 주님은 이전보다 더 많은 말일성도들에게 이러한 최고의 축복들을 주고 계십니다. 주님의 집에서, 충실한 교회 회원들은 “하늘에서 오는 권능”(교리와 성약 95:8)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권능을 통해 우리는 유혹을 이기고 성약을 지키며, 주님의 계명을 지키고, 복음에 대한 뜨겁고 두려움 없는 간증을 가족과 친구와 이웃들에게 전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지난 7월에, 저희는 힝클리 대관장님을 모시고 유타 몬티셀로 성전 헌납식에 참석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이 성전은 주님께서 우리의 예언자에게 성도들이 보다 가까이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지으라고 명하신 성전의 첫번째 소산입니다. 자신의 마을에 성전이 지어질 것이라고는 기대도 하지 못했던 충실한 성도들과 함께 한 매우 영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이들은 큰 신앙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들 중에는 유타 주 남동부의 고원 지대에 시온을 세우고자 오랫동안 고생하고 노력하고 희생한 홀-인-더-록 개척자들의 후손도 있었습니다. (처치 뉴스, 1998년 8월 1일자, 4쪽 참조)

형제 자매 여러분, 교회에서는 위대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례 없는 전진을 하고 있습니다. 힝클리 대관장님께서는 뛰어난 지도력으로 우리에게 보다 노력하도록 독려하십니다. 우리는 새로운 차원의 영성을 얻게 될 것이며, 신앙과 소망과 사랑이 얼마나 우리 생활의 중심 요소가 되느냐에 기초를 두고 예수 그리스와 더욱 조화를 이루는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도전과 시련이 분명히 있을 테지만, 유례없이 강한 확신을 갖고 있으면 보다 큰 평안과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 14:27 참조)

  • 간증

특별한 견증자로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주님께서는 그분의 예언자인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님을 통해 교회를 관리하신다는 사실을 간증드립니다. 우리 모두 주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에 대비하여 그분의 거룩한 성품들을 키울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