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무슨 권세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하나님의 신권은 이 세상에서 선을 진작시키는 탁월한 권세가 되었습니다. …이 위대한 권세가 우리에게 맡겨졌습니다. 우리가 책임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이 권세를 약화시키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하나님의 신권을 지닌 사람으로서 여러분이 보여 주신 헌신과 충실함에 대해 제 사랑과 감사를 드립니다. 

올해 초에 저는 세 아들을 데리고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 제 아버님이 미 육군 병사로 참전했던 프랑스의 격전지를 방문했습니다. 전쟁에 휩쓸렸던 모든 사람들에게 그 고통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으며, 그 후유증 또한 처참한 것이었습니다. 수백만을 헤아리는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비록 제 아버님은 전사는 모면하셨으나, 죽을 때까지 정신적·육체적인 상처를 짊어지고 가셔야 했습니다. 끔찍한 경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님은 일기의 서두에 이렇게 기록하셨습니다. “만약 그 일을 다시 해야 한다면 나는 그렇게 하겠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의 의무이므로”.(조지 에이 파우스트 일기, 소장본) 80년의 세월이 묻혀 있는 아름다운 시골길을 지나 우리는 양편의 병사들이 함께 묻혀 있는 묘지와 격전지를 방문했습니다. 파리 외곽의 국군 묘지에서 저는 스탠포드 힝클리의 묘지 십자가에 손을 얹고 힝클리 대관장님께 휴대 전화로 전화를 걸어 제 감회를 전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특히 우리 가족에게는 비극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님의 몇몇 육촌 형제들이 대체로 같은 전쟁터에서 적으로 대적하며 싸웠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후에 이 친척들과 친분을 갖게 되었는데, 그들이 점잖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기독교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 거창한 지정학적인 역학 관계나 전쟁의 발발 동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분들이셨습니다. 제 아버님처럼 그들도 자신들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조국에 봉사했던 것이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과 뒤이은 여러 전쟁들은 너무나 큰 고통을 야기했고 무수히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간단히 한마디로 말하자면 전쟁은 대체로 극도의 권력욕에 기인합니다. 

오늘 밤 저는 신권을 지닌 젊은이들에게 권세와 그 적합한 사용,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책임의 수행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권세란 굉장히 매혹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습니다. 자기 형성의 시기에 있는 젊은이들은 여러 형태의 권력가에 매력을 느낍니다. 인기 스포츠맨, 연예인, 부유층 인사, 정권을 가진 자 등이 이러한 권력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일부 젊은이들이 특히 학업 성적이 좋지 않거나, 대표팀에 들지 못하거나, 엄선된 합창단의 단원으로 선택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굴욕감을 느낄 수도 있으며 나아가 자신의 부족함을 상쇄시켜 줄 것같이 생각되는 집단으로 유인되기도 합니다. 소속감이나 권력에 대한 이러한 갈망은 마치 나방이 불빛에 꾀어 들 듯이 그들을 길거리의 폭력배들이나 폭력적인 성향을 띤 유사 조직에 꾀어 들게 하여 육체와 영혼을 파멸로 이끄는 습관에 젖어 들게 합니다. 

신권을 지닌 젊은이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권세의 근원에 자유롭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신권입니다. 다른 힘의 근원과는 전혀 딴 판으로, 거룩한 신권은 합당하게 사용하는 가운데 영원히 지속될 영적이고도 물질적인 힘이 계속해서 자라도록 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의 권능과 굳게 매어져 있어 뗄 수 없으며” (교리와 성약 121:36) 또한 “의의 원칙이 아니고서는 운용될 수 [없습니다].” 교리와 성약 121:36) 신권에 관하여 예언자 요셉 스미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모든 지식과 교리, 구원의 계획, 그리고 중요한 모든 일이 하늘로부터 계시되는 통로입니다. 이것은 전지 전능하신 이께서 … 자신을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사람의 자녀들에게 나타내 보이신 통로이며 또한 마지막 순간까지 그분의 목적을 알려 주실 통로입니다.” (교회사 4:207)

이 권세는 의무를 이행하는 충실함의 정도에 따라 주어집니다. 예언자 요셉은 “주님은 수행해야 할 일의 정도에 맞게 권세를 주셨으며, 우리 앞에서 펼쳐지는 경주에 필요한 힘을 주시며, 우리가 필요로 하는 만큼 은혜와 도움을 주셨습니다.”(교회사 1:176)라고 말했습니다. 한 예로 예언자 엘리야는 자신의 신권을 사용하여 하늘로부터 불이 내리도록 하여 하나님의 권세를 보여 줄 수 있었습니다. 

휴 비 브라운 부대관장님은 총관리 역원이 되시기 전에, 영국에서 캐나다군의 장교로 복무하면서 큰 권한을 갖고 있었습니다. 병사들은 그 앞에서 차려 자세를 취했으며 그를 “장교님“이라 불렀습니다. 하루는 병원에서 누군가가 뵙고자 한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그가 그 곳에 도착하자, 누군가가 그를 한 젊은이가 병들어 누워 있는 작은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브라운 형제는 자신이 한때 그 젊은이의 주일 학교 교사였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습니다. 그 젊은이는 “브라운 형제님“하고 부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를 위해 형제님의 권능을 사용해 주시겠습니까? 의사들은 제가 살아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저를 축복해 주시겠습니까?” 그 젊은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해 주면서, 대영제국의 제복을 입을 때 자신이 느꼈던 모든 자부심이 사라졌습니다. 그 젊은이가 필요했던 도움은 대영제국 군대의 장교로서 갖는 어떠한 권한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바로 신권의 권능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되고자 하는 사람이 되라”, 휴 비 브라운, 브리감 영 대학 올해의 연설 (1967년 2월 14일), 8∼9쪽)

신권의 권세에는 무거운 책임들이 따르게 됩니다. 진실로 우리는 의무를 행하고자 할 때 비로소 신권의 권세를 누릴 수 있습니다. 과거에 이 교회의 신권 소유자들은 역경을 통해 그에 따른 의무에 대한 몇 가지 교훈을 배워야 했습니다. 교회 초기의 형제들은 미덥지 못하고 경험이 없었습니다. 주님은 예언자 요셉으로 이끌게 하시는 가운데 형제들을 가르치셨으며, 그들을 체로 치셨습니다. 그들은 박해를 받고 무자비하게 탄압을 받으면서 자신들의 의무를 행하는 것을 배워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족했습니다. 일부 초기 성도들은 세 차례나 모진 시련과 단련의 과정을 견딘 끝에 이 산속에 있는 계곡에서 안식처를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 세 차례에 걸친 시험 가운데 첫째 것은 1834년의 봄과 여름에 조직되었던 시온 진영이었습니다. 둘째 것은 그 후 4년 뒤에 있었던 일로 수천 명의 성도들을 미주리 주에서 일리노이 주로 이주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12년이 지난 후에 일리노이에서 윈터 쿼터스로 그리고 그 다음해에는 미대륙의 서부에 있는 산속의 계곡으로 이주하는 장엄한 서부로의 이주였습니다. 

시온 진영은 미주리 주 잭슨 군에 성도들의 사회를 재건하기 위해 조직되었습니다. “시온을 다시 찾기 위한”(비 에이치 로버츠, 교회 약사) 이러한 노력에 약 200명의 남자가 예언자 요셉 스미스의 개인적인 지도력에 따라 가장 어려운 환경에서도 1600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여행했습니다. 

당시에 16세의 나이로 시온 진영에 참가하도록 선발된 조지 에이 스미스는 형제들이 감당해야 했던 고난과 시련과 역경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는 1834년 5월 26일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날씨가 너무나 무더운 탓에 우리는 갈증으로 심한 고통을 겪었다. 갈증을 해소하고자 생명체가 득실대는 수렁의 물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나는 이빨로 꿈틀대는 해충을 걸러내는 법을 배웠다.”(“조지 앨버트 스미스의 역사”, 타이프라이터로 쓴 문서, 역사 분과, 자료 관리부,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17쪽) 다음 날 기진맥진한 솔로몬 험프리가 땅에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그가 깨어났을 때, 방울뱀이 머리에서 30 센티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뱀은 그와 모자 사이에 있었는데, 그 모자는 그가 잠들 때 쥐고 있었던 것이었다. 여러 형제들이 그의 주변에 모여들며 말했다. ‘방울뱀이오, 죽입시다.’ 그러나, 험프리 형제는 말했다. ‘안 되오, 내가 그 뱀을 보호하겠오. 그 뱀이 나와 함께 단잠을 잤으니 여러분이 그 뱀을 해치지 못하도록 하겠오.’” (조지 앨버트 스미스의 역사, 18쪽) 저는 어떠한 경우라도 방울뱀이랑 같이 단잠을 자고픈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조지 에이 스미스 형제는 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예언자 요셉도 여행하는 동안 줄곧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도맡아 하였다. 진영을 보살피고 관리하는 외에도 대부분의 시간을 걸어갔다. 그의 발은 온통 물집이 잡히고 피가 나 쓰라렸다. 무더운 여름철에 매일같이 40∼64킬로미터를 걸은 데 따른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그는 여행하는 동안 단 한마디의 불평이나 투덜거림도 하지않은 반면에, 진영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에게 … 식량 부족, 저질의 빵, 구더기 낀 베이컨과 치즈 등에 관해 불평했다. … 우리가 시온 진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기도도 하지 않았으며, 사려 깊지 않으며, 조심성 없고 부주의하며, 어리석고 사악했으나, … 요셉은 마치 어린 아이들을 대하는 것처럼 참을성을 갖고 우리를 가르쳐야 했다. 그러나 진영에는 결코 투덜거리지 않고 언제나 준비되어 있으며 지도자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기꺼이 행할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조지 앨버트 스미스의 역사, 33쪽)

비록 시온 진영이 성도들에게 미주리 주 잭슨 군에 있는 그들의 소유지를 다시 찾아 주겠다고 천명했던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무엇보다 값진 혹독한 배움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생명 그 자체보다 더 귀한 것이 바로 신앙이란 사실을 배웠습니다. 1835년 2월 14일에 열린 한 대회에서, 시온 진영에서 봉사했던 사람들 가운데에서 십이사도 정원회 및 칠십인 정원회의 일원들이 선택되었습니다. 이 용감한 형제들이 이후 50년 동안 교회를 인도했습니다. 

주님은 교회 역사에서의 이 기간 동안에 신권에 따른 또 다른 위대한 의무를 가르치셨습니다. 교리와 성약 104편에서 주님은 가난한 사람에 관한 교회의 질서를 바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어느 사람이 내가 만든 것을 풍성하게 갖고 있으면서도 나의 복음의 율법에 따라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자기의 몫을 나누어 주지 아니하면 저는 악한 자들과 더불어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받으면서 눈을 들어 바라보리라.”(교리와 성약 104:18) 이 판결문에 따라 미주리 주에서 탈출하던 시기인 1839년 1월에 많은 형제들이 “이 주에서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남지 않을 때까지 … 서로 지원하고 돕기로” 성약을 맺었습니다.(교회사 3:251; 3:250, 252∼255 참조)

1839년 2월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다니엘 스틸웰 토마스는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미시시피 강을] 건너기 전에 우리는 마차에서 짐을 내리고는 가난한 사람들을 데려오고자 마차를 돌려보냈다. 이렇게 하여 여전히 폭도들의 위협을 받고 있는 이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다니엘 토마스에게는 다섯 자녀가 있었는데 신발은 고작 한 켤레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궁핍한 성도들을 돕기 위해 마차를 되돌려 보냈습니다. 

그 후 1845년 10월 6일에 일단의 신권 소유자들이 나부 성전에 모여서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이 다른 성도들과 함께 서부로 이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성약이 적힌 서류에 자신들의 이름을 엄숙히 서명했습니다. 1846년에 십이사도 평의회는 성도들의 서부 이주를 돕기 위해서라면 나부와 커틀랜드에 있던 성전은 물론 그 지역의 모든 교회 자산을 팔아도 좋다는 권한을 관재인에게 부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여전히 계속되는 신권 의무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 미망인, 고아, 미혼모와 그의 가족들을 포함하여 모든 회원을 돌보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우리는 우리 형제들 가운데 영적으로 궁핍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 그들은 물론 그들의 가족까지도 “이 세상에서는 평화를 얻고 장차 올 세상에서는 영생을”(교리와 성약 59:23) 누릴 수 있도록 할 또 다른 책임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아론 신권을 지닌 젊은이 여러분은 신권의 의로운 행사를 통해서 맛볼 수 있는 만족을 이제 어렴풋이 보았습니다. 이 신권은 “천사의 성역의 열쇠”(교리와 성약 84:26)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씻어 내는 침례라는 신성한 의식을 행할 수 있는 권한이 제사에게 허용됩니다. 아론 신권 소유자들은 성찬의 신성한 상징물을 집행하고 전달합니다. 이 두 의식은 구세주의 속죄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여러분은 가정 복음 교육 동반자로서 교회를 살피며 회원들에게 “기도할 것과 가족의 의무를 다할 것”(교리와 성약 20:51)을 권고해야 합니다. 

또 다른 특별한 의무가 훌륭한 젊은이 여러분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을 돌보는 권능을 지닌 사람들의 권고를 따르는 의무입니다. 부모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십시오. 부모님의 의견에 동의하든지 하지 않든 간에 그 분들에게 순종하십시오. 부모님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여러분을 사랑하며, 또한 진심으로 여러분에게 가장 큰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정원회 회장과 감독, 스테이크 부장, 사도, 선견자, 계시자, 특히 힝클리 대관장님과 교회의 다른 총관리 역원들의 말씀에도 귀기울이십시오. 그 분들은 여러분을 의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권은 이 세상에서 선을 진작시키는 탁월한 권세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사회의 변두리에서 맴도는 소수가 아닙니다. 선을 진작시키는 이 위대한 권세가 우리들에게 맡겨졌습니다. 우리가 책임을 다하지 않음으로써 이 권세를 약화시키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의의 갑옷을 단단히 입어야 합니다. 신권의 위대한 모든 권세를 끌어낼 수 있도록 모든 면에서 합당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거래에서 완전히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깨끗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난하고 궁핍한 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군대로서 우리는 온 세상에서 의와 진리의 대업을 촉진시킬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권능을 부여받은 종입니다. 이 권능과 함께 거룩한 사업이 세상에 나아 가도록 할 의무가 따릅니다. 우리는 전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단체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허락된 열쇠와 권세와 권능으로 우리가 행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이 위대한 신임에 참되어야 합니다. 

미래에도 여전히 우리는 계속해서 장애물과 난관과 도전과 적대 세력 등과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사탄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사람을 기만하고 마음을 산만하게 하고 타락시킬 수 있는 방법을 더욱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채찍질당할 것입니다. 미래의 어느 날,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투자하신 이 위대한 권세로 무엇을 행했는지에 대한 보고를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을 통해 예언자 요셉에게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고든 비 힝클리 대관장의 영도력 아래서 하나님의 사업이 힘차게 나아가고 있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구세주께서 돌아가신 후에, 그분의 사도들은 그분의 이름으로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을 행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가야바를 비롯한 대제사장 무리들에게 “너희가 무슨 권세로 … 이 일을 행하였느냐”(사도행전 4:7)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세상에 이 모든 것을 거룩한 신권의 권세에 의하여, 거룩한 신권의 권세를 통하여, 그리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루어짐을 선언합니다

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엄숙히 간증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