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시대

지금은 누군가의 삶에 손길을 내밀어 영향을 줄 시기이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겠다고 결심할 시기이며, 성전 불빛이 항상 밝게 빛나도록 도와야 할 시기입니다.

최근 어느 성찬식에서, 한 사랑스러운 젊은 여성이 좋은 말씀을 위해서는 약간 감칠맛나는 유머나 터무니없는 거짓말 같은 것으로 시작하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유머있는 말을 할 능력은 전혀 없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 오전에 이 연단에 서니 너무 편안하고 조금도 떨리지 않는다고 말씀드리면 조금 농담이 될까요?

최근에 150주년 기념 경축 행사를 끝마치면서, 우리의 사랑하는 예언자께서는 다음 말씀으로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셨습니다. “고개를 돌려 미래를 보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지금은 기회가 너무나 많은 시대입니다. 붙잡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사업을 크게 전진시키는 데 약간의 역할을 수행할, 너무나 훌륭한 때인 것입니다.”(성도의 벗, 1998년 1월호, 67쪽)

우리 누구나 일상 생활에서 시련을 겪습니다. 하지만, 시련에는 가장 훌륭한 기회도 있습니다. 그 기회들을 알아보고 그에 따라 생활하면, 발전과 행복과 영적인 성장이 뒤따릅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데 참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기회가 무한히 많기는 하지만,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이 연단에 서시는 연사들로부터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라는 가르침을 거듭거듭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고 있다면, 오늘이 바로 그대로 행하여 기회를 잡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받을 것이라고 약속된 축복들을 받을 훌륭한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안식 날”과 “노는 날”을 같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훌륭한 말일성도 지역 사회에서 몇 개의 소형 소매 대리점을 관리하는 한 친구는 제게 자기는 언제 일요일 예배 모임이 끝났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손님수가 극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형태의 오락 활동이 많은 사람들의 생활에서 “최고의 안식일 활동”이 되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는 결혼한 뒤에 솔트레이크 계곡의 남동부 쪽에서 살았습니다. 가끔 이웃의 조그만 가게에 식료품을 사러 갔다가, 그 가게에서 조셉 필딩 스미스 대관장님 부처가 물건을 사시는 것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몇 차례 그런 모습을 본 뒤, 저는 스미스 대관장님께 왜 많은 식료품 가게를 두고 하필이면 시내에서부터 이 가게까지 오시느냐고 여쭤봐야겠다는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안경 너머로 보시던 대관장님은 단호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어린 친구!(이 호칭에 정신이 번뜩 들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가게들을 이용한다네.”

안식일을 경건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은 새로운 권고가 아닙니다. 어떤 세대든지 당시의 예언자들이 선언했고 오늘날의 예언자들이 수없이 재확인한 내용을 오늘 다시 듣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말일의 경전에는 다음과 같은 권고가 들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더욱 온전히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흠 없게 지키고 기도의 집에 가서 나의 거룩한 날에 네 성찬을 바칠지어다. 진실로 이 날은 네 일을 쉬고 가장 높으신 이에게 예배 드리는 날로 정해져 있느니라.”(교리와 성약 59:9∼10)

저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특히 청소년들의 경우, 그들이 정규적으로 참여하기를 너무도 바라는 운동 팀들이 일요일에 경기 일정을 잡기 때문에 더욱 힘들다는 것을 압니다. 안식일에 몇 가지 물건만 사면 되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일요일에 편의점에 잠시 들러 물건 몇 개 사는 것쯤이야 사소하게 보일 거라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저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영의 속삭임을 들을 준비를 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계명 가운데 하나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지금은 똑바로 서서 십계명 가운데 네 번째인 다음 계명을 지키는 충실한 자로 헤아림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의 시기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출애굽기 20:8∼10)

몇 년 전, 힝클리 대관장님은 총관리 역원으로 일하시는 동안에 성전 헌납식이나 재헌납식에 얼마나 참석하셨는가에 관한 물음에 답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최소한 운영되는 성전 수가 100개가 될 때까지는 계속해서 성전 헌납식에 참석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셨습니다. 저는 그 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잠시 어림셈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당시 운영 중이던 성전 수와 설계 중이거나 건축 중인 성전 수를 다 합쳐 보아도 백 개가 되려면 한참 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관리 감독단은 건축한다고 발표된 성전을 감독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대관장님, 주님께서 만수 무강의 축복을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당시, 그 때만 해도, 예언자께서 하늘의 음성을 듣고 합당한 말일성도들이 성전 예배와 관련된 축복에 참예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주기 위한 방법을 고려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거의 몰랐습니다. 지난 4월 연차 대회에서 힝클리 대관장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듣고 저 또한 여러분과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희들은 최근 수개월 동안 멀리 계시는  교회 회원들을 방문하는 여행을 했습니다. 이 세상의 물품을 거의 갖지 못하신 많은 분들이 저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말일의 사업에 관하여 위대한, 불타는 신앙을 갖고 있는 분들입니다. 그들은 교회와 복음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뜻을 행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비록 적은 액수이지만 십일조를 바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전 방문을 위하여 엄청난 희생을 치르기도 합니다. 그들은 완행 버스와 낡은 배를 타고 한번에 여러 날 동안 여행을 합니다. 그들은 돈을 저축하고, 또 성전 방문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그 돈을 쓰지 않고 지냅니다. 그들은 인근에 있는 성전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

“따라서, 저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교회 회원들에게 약 30개의 작은 성전을 곧 건립할 계획을 발표하는 바입니다. 열일곱 개의 새로운 성전이 건립 추진 중입니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성전 수는 현재 운영 중에 있는 51개 외에 47개가 될 것입니다… 금세기 말까지 꼭 100개가 되도록 하기 위해 2개를 더 건립했으면 좋겠습니다.”(성도의 벗, 1998년 7월호, 87∼88쪽)

이 경륜의 시대 초기에, 우리의 선조들은 성전을 짓기 위해 많은 희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축복 받았습니다. 그 분들은 육체적인 노동 뿐 아니라 미약하나마 재산까지 후하게 바쳤습니다. 처음에는 커틀랜드에서, 그리고 나부에서 성전이 완성될 때까지, 성도들의 희생은 매우 컸습니다. 그 분들은 그에 순응함으로써 축복 받았습니다. 성도들이 산 꼭대기들로 이주한 후에, 서부의 여러 곳에서 성전이 다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성전을 짓는 일은 많은 희생을 의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성전을 짓는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활용한 사람들에게 축복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전 봉사와 관련하여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지금과 같은 기회의 때는 과거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우리에게는 못을 박거나, 돌을 다듬거나, 목재를 깎거나 콘크리트를 붓거나, 성전 건축 현장에서 육체 노동을 하라는 요구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전 건축 작업이 계속 진행되어 나갈 수 있도록 충실하게 십일조를 바칠 수 있는 기회는 많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보다 앞서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거룩한 구원의 의식을 행할 수 있기에 합당하게 되라는 권고도 받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성전의 불빛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켜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위대한 기회를 갖고 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여러 성전이 현재 주말에 하고 있는 것처럼 밤새도록 불을 밝히고 있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몇 년 전, 한 대형 통신 회사가 그들의 광고에서 다음과 같은 문구를 사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손을 내밀어 누군가를 만져 보세요.” 힝클리 대관장님은 우리에게 반복해서 손을 내밀어 누군가를 만질 수 있는 기회가 많음을 거듭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최근 우리 교회에 들어온 분들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대관장님은 그분들에게 사랑과 우정의 손길을 내밀어 만지고, 외롭게 생활하는 분들에게 격려와 조건 없는 사랑과 필요하다면 완전한 용서의 손길까지 내밀고, 우리와 같은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이웃과 동료들과 친구들에게 말씀과 행위를 통하여 성령의 감화를 받을 수 있는 축복을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최근 제가 참석한 한 스테이크 대회에서 순서의 일환으로 스테이크 및 와드 평의회 훈련 모임이 있었는데, 비회원 뿐 아니라 새로운 회원과 활동이 저조한 회원들에게도 손을 내밀어 만질 때 “배타적”이 아니라 “포용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에 관하여, 잘 준비된 발표가 중점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스테이크 청녀 회장인 로라 칩먼 자매님은 우리가 손길을 내밀 때 “포용적”이 되는 데 도움이 되는 다섯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첫째, 자기 반성 - 우리는 무의식 중에 배타적인 태도로 의사을 소통하지 않는가? 둘째, 확인 - 우리는 최근에 침례 받은 사람이나 활동이 저조한 회원, 혹은 비회원 가운데 우리 이웃이나 지역 사회에 사는 사람들을 아는가? 셋째, 개별 특성 파악 - 우리는 우정 증진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관심사항, 재능 및 특기를 알고자 하는가? 넷째, 초대 - 우리는 적절한 활동에 이웃과 친구들을 초대하는가? 다섯째, 참여 - “포함“시키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특기와 재능과 능력들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최근에 어렸을 적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형제는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는 개념들을 잘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읽거나 쓰지를 못했습니다. 그가 하는 말 중에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겨우 몇 마디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혼잣말이었습니다. 그만이 사용하는 말을 몇 마디나마 알아듣는 친구도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대개 우리는 그가 걱정을 표현하는지, 아니면 그만의 너무나 많은 사랑을 표현하는지를 말의 음색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린이라는 그 친구는 어릴 적의 많은 생활을 고향에서 떨어진 특수 학교에서 보냈습니다. 여름철과 휴일 기간 동안만 집에서 가족과 보냈습니다. 지난 17년 동안, 가족들이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린은 그의 필요 사항을 잘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요양원에서 생활했습니다.

린이 사망하자, 그의 특별한 친구들 가운데 한 명이 장례식을 우리가 어렸을 때 참석했던 집회소에서 갖도록 주선했습니다.  장례식에는 요양원의 친한 친구들과 직원, 오래 전부터 그를 기억하고 있던 몇몇 와드 회원 및 십여 명의 어릴 적 친구들과 그 가족들이 참석했습니다. 린이 요양원에서 오랫동안, 때로는 외롭게 지내는 동안 그와 가깝게 지냈던 몇몇 형제들이 고별사를 전했습니다.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이전의 모든 추억들이 새롭게 떠올랐습니다. 한 친구는 언젠가 주일학교 교사님이 반원들에게 간증을 전하도록 요청했던 때를 회상했습니다. 그 교사님은 우리에게 차례로 요청했는데, 린은 건너뛰었습니다. 아마 린이 이해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린은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올바른 신호를 보내서, 교사님에게 자신도 간증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뜻을 알렸습니다. 그가 말한 것의 상당 부분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우리는 그의 사랑과 완전히 기능하지 못하는 신체 안에 비극적으로 잠겨 버린 큰 영의 깊이를 느꼈습니다. 교실에 영이 참으로 강하게 임하고 있었습니다.

요양원에서 온 직원들과 특별한 친구들이 린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말을 들으니, 린이 그의 겸손한 방법으로 손을 내밀어 이들의 삶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최소한 세 명의 친구와 그 가족들이 정규적인 방문, 차로 데려오고 데려다 주기, 특별한 기회나 생일 파티 때 저녁 식사에 초대하기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린에게 손길을 내밀어 도왔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고별사를 듣고 회고담을 모두 끝냈을 때, 우리는 모두 신체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사랑하는 천사 친구가 우리를 비롯해 자주 사랑에 찬 손길을 내밀었던 훌륭한 가족들에게 자신이 받은 것보다 훨씬 더 고귀한 가치를 주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참으로 기회가 많은 시대입니다. 몇 가지만 언급하자면, 누군가의 삶에 손길을 내밀어 영향을 줄 시기이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겠다고 결심할 시기이며, 성전 불빛이 항상 밝게 빛나도록 도와야 할 시기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신 우리 구세주요 구속주께서는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며 그분들이 주신 기회들을 우리가 꽉 붙들기를 바라고 계신다는 사실을 간증드립니다. 너무나 헌신적으로 용기와 권위의 기를 들고 앞장서 가시는 예언자께 감사와 사랑의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