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속으로 – 역사와 추억의 발자취

구두닦이 청년의 십일조와 왕복 10시간의 버스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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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스타브 도레의 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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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미술가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É, 1832. 1. 6 ~ 1883. 1. 23)는 10,000점이 넘는 판화를 만들었으며, 그중에는 성경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100점의 판화로 이뤄진 바이블 갤러리도 있다. 위 그림은 바이블 갤러리의 71번째 판화로, 마가복음 12장 41~44절의 내용을 담아낸 작품이다.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이 구절을 소재로 한 예술 작품의 수가 적지 않지만, 그 구성이 창작자의 해석에 따라 차이가 있고, 당연히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보는 이마다 느낌도 제각기 다를 것이다.

도레의 판화에서 과부는 고민이 있는 듯, 아니면 무엇인가를 간절히 기원하는 듯 고개를 숙이고 남의 이목이 부담스러운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조용히 본인에게는 요긴하게 쓰일 수 있는 적은 금액의 돈을 헌금함에 넣고 있다. 어쩌면 다른 헌금함과 달리 자신의 적은 돈을 남몰래 넣을 수 있을 것 같아 구석에 위치한 헌금함을 일부러 찾았을 수도 있다. 벽과 자신 몸 사이의 한 규빗 남짓한 거리가 그녀에게 편안함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 뒤로 한 계단 위에서 이 모습을 보던 여러 부자 중 맨 앞의 사람은 자신의 우월함을 보이려는 것인지 허리를 뒤로 젖히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애써 외면하려고 고개를 돌리고 있다.

조금 더 멀리서 네 계단 뒤에서는 주님이 과부를 가리키시며 여러 제자에게 과부가 낸 헌금의 의미를 가르치고 계시다.

교회 역사 도서관에 소장된 구술 역사에는 한 개척자 회원의 이런 역사가 있다.

 

60년 전의 헌금 영수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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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61년 전인 1959년에 발행된 십일조 영수증으로, 몇 가지 역사적 정보를 제공해 준다.

①   날짜: 1959년 3월 15일, 위에 일본에서 쓰던 “쇼와(昭和)” 연호가 보인다.

②   조직 이름: 한국 지방부(Korean District), 부산 지부(Pusan Branch)

③   금액: 310 (Yen, 円) 일본 화폐 표시

④   헌금 종류: 십일조, 금식 헌금, 복지 헌금, 전도 자금, 유지 자금

⑤   영수자: 관리 장로 또는 지부 회장 (Newel E. Kimball)

당시에는 일본 도쿄에 본부가 있는 북극동 선교부 산하에 한국 지방부가 있었고, 한국 지방부는 서울에 삼청, 동부, 서부 지부, 그리고 부산에 부산 지부가 있었다. 그때는 일본에서 영수증 양식을 가져다 썼기 때문에 일왕의 연호와 일본 화폐 단위가 표시되어 있다. 헌금 종류 또한 지금과는 조금 다른 항목들이 보이고, 서명한 뉴얼 이 킴볼 장로는 한국에 두 번째로 입국한 선교사 그룹 중 한 명이다. 그는 선교 사업 이전에 미군 병사로 6.25 전쟁에 참전했던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구두닦이, 그리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가는 길

이 구겨진 영수증에는 한 개척자의 남모르는 사연이 들어 있다. 헌금을 한 황효연 형제는 1939년에 일본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그는 부모와 함께 배를 타고 대한해협을 건널 때, 배가 침몰할 위기에 빠지자 승객들이 무게를 줄이느라 소중한 짐들을 바다에 버리며 우는 모습도 보았다고 한다.

전쟁 후, 그는 어린 나이에 먹고 살기 위해 남의 집에서 품을 팔며 살기도 하다가 마산에서 구두닦이를 시작했는데, 텃세 때문에 구타도 여러 차례 당했다고 한다. 황 형제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서 한글도 경찰서에서 치안 유지 차원에서 길거리 청소년에게 글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통해 겨우 깨우쳤다.

그러다 1958년에 그는 단골손님이던 군인이 건넨 한 마디, 즉 교회에 다니느냐는 질문이 계기가 되어 군부대에서 열리는 성찬식에 참석하게 된다. 황 형제는 반년 넘게 교리를 공부한 후, 1958년의 추운 겨울날 이름 모를 바닷가에서 다른 1명과 함께 침례를 받았다. 그에게 교회에 다니느냐는 질문을 건넸던 군인은 한국의 초기 개척자인 홍병식 전 대전 선교부 회장이었다.

당시 마산에는 교회가 없었기에 황 형제는 부산 지부에 참석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일요일 새벽에 일어나 채비를 하고 새벽 5시에 첫차를 탔는데, 그래도 족히 5시간이 넘게 걸렸다. 그렇게 황 형제는 오전 모임이 끝날 때쯤 교회에 도착했다. 황 형제는 교회 내에 아는 사람도 없고, 어디에 십일조를 내야 하는지도 몰랐기에 수줍은 모습으로 교회를 두리번거렸다. 당시에 그는 구두 한 켤레를 닦으면 2원을 받았는데, 적게 받을 때도 있고, 외상 손님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영수증에 적힌 금액은 적어도 150명분의 구두를 닦아야 하는 금액이다. 구두 한 켤레에 30분을 잡으면 75시간의 노동을 해서 번 돈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구두닦이를 하고, 한때는 선교사 숙소에서 요리사로 일하기도 하고, 결혼해서 다섯 자녀를 키우며 노점상을 하면서도 그는 십일조의 법을 충실히 지켰다. 그는 일부러 어린 자녀들 앞에서 십일조 낼 돈을 따로 떼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어려운 살림에도 왜 그렇게 십일조의 법을 지켰느냐는 우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말라기 4장에 보면 십일조에 대한 희망적인 말씀이 적혀 있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내야 내가 하나님께 증인을 할 수 있잖아요. 배워도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여든 해가 넘은 인생을 되돌아볼 때 말라기에 나오는 그런 넘치는 축복이 있었느냐는 또 다른 우문에 그는 단호히 말했다.

“나 같은 (약간의 시각) 장애인이 … 남에게 구애받지 않고 다섯 자녀를 키우고, 일곱 식구가 먹고살았는데 그것만 해도 나는 충분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성역을 행하는 즐거움

선교사들이 부산에 이어 마산에 파견되고, 그들이 진해를 오가며 구도자들이 생기고 침례를 받게 되자 마산에 있는 황 형제의 집이 상당 기간 예배 장소로 쓰였다. 당시 선교부 회장인 브라운 회장이 지방부 대회를 앞두고 황 형제를 불렀다. 십일조의 법, 순결의 법, 안식일의 법을 잘 지키느냐는 브라운 회장의 질문과 그에 대한 황 형제의 대답이 오간 이 시간은 사실 지부 회장 부름을 위한 접견이었다고 한다.

황 형제는 글도 겨우 읽는 사람이 부름을 받아 두려움이 있었고, 먹고 살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 했지만, 부름이 오면 따르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복음을 전하고, 회원들, 특히 저활동 회원을 찾아가 교회로 오게 하는 일은 큰 즐거움이었다고 회상한다. 황 형제가 지도자로 봉사하던 시절을 함께한 사람들 중에는 청년이었던 양기욱 전 부산 스테이크 회장, 김충석 전 창원 스테이크 회장도 있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했다. 그는 진해 지역에 회복된 복음이 들어올 때 선교사들을 영접하고, 진해 지역에서 역사적인 현장을 늘 지켜 오며 그 지역의 땅을 비옥하게 하는 데 일조한 주님의 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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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  황효연 형제의 구술 역사는 현재 교회 역사과 제출 처리 중이며, 조만간 교회 역사 도서관 웹사이트에서 검색할 수 있을 것이다.
  • 기사 작성: 김대연 형제 (역사위원회, 전문가), adrianme@naver.com, 010-3764-6277
  • 삽화: 이인규 형제
  • 출처: 

    1.     판화: http://bibleing.com/images/the_widows_mite.html

    2.     진해 지역 현판식: 성도의 벗, 1975년, 2월호, 48쪽.

    3.     헌금 영수증: 황효연 형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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