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속으로 – 역사와 추억의 발자취

1900년 10월, 조지 큐 캐넌 회장 연차 대회에서 처음으로 한국(Corea)을 언급하다

조지 큐 캐넌 삽화

1830년, 교회를 회복한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생전에 “하나님의 진리는 모든 대륙에 퍼지고, 모든 지역을 찾아가고, 모든 나라를 덮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렇다면 한국 성도들 입장에서 볼 때, 과연 선지자들은 세상이라는 주님의 포도원에서 언제부터 한국을 구체적으로 염두에 두게 되었을까? 미국에서 초기 성도들이 모진 박해를 피해 서부 횡단 이주를 통해 1847년에 솔트레이크밸리에 도착하고, 1893년 4월 6일에 솔트레이크 성전을 헌납하기까지 갖가지 어려움을 헤쳐 나왔던 19세기의 마지막 연차 대회였던 1900년 10월 연차대회를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제일회장단: 조지 큐 캐넌(제1보좌), 로렌조 스노우(회장), 조셉 에프 스미스(2보좌), 왼쪽부터
당시 제일회장단: 조지 큐 캐넌(제1보좌), 로렌조 스노우(회장), 조셉 에프 스미스(2보좌), 왼쪽부터

1900년 10월 연차 대회는 로렌조 스노우 교회 회장의 감리로 10월 5일 금요일부터 7일 일요일까지 솔트레이크 태버내클에서 개최되었다. 그로부터 일 년 전인 1899년 5월, 스노우 회장은 세인트조지를 방문하여 17일에 세인트조지 태버내클에서 십일조에 대한 그 유명한 계시를 받고, 돌아오는 길에 프로보와 로건을 비롯해 인근의 여러 스테이크를 방문해 성도들이 십일조의 법에 순종할 것을 강조한 바 있었다.

대회 마지막 날인 10월 7일, 오전 10시 모임에 이어 오후 2시 모임이 시작되었다. 합창단과 회중이 함께 “우리 인도하실 선지자 주신”을 부른 뒤, 찰스 더블유 펜로즈 장로가 개회 기도를 했다.

이어서 연단에 오른 스노우 교회 회장은 시온의 구속과 성도들의 운명에 관해 말씀하고, 조셉 스미스가 하나님의 선지자였다고 간증하였다. 또한 회원들이 두 해 전에 비해 작년과 올해는 십일조를 2배나 더 내었다고 언급했다. 교회 회장으로서 십일조 액수보다는 성도들이 하나님에 대한 의무에 충실했다는 점에 더 흡족하셨을 것은 자명하다. 이어서 호레이스 에스 엔사인 장로가 “예루살렘”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연차 대회에서 한국이 처음 언급된 부분, 대회보고 68쪽
연차 대회에서 한국이 처음 언급된 부분, 대회보고 68쪽

두 번째 연사는 제일회장단 제1보좌이던 조지 큐 캐넌 회장이었다. 그는 먼저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 준비에 대해 언급한 뒤, 끝 무렵에 경고의 음성을 듣지 못한 많은 나라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씀했다.

“장로들이 일본에 들어갈 때가 되었으면, 일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얼마 후면, 한국과 만주, 중국에서도 문이 열릴 것이며, 장로들이 그리스도의 병사들처럼 구원의 메시지를 가지고 그곳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회복된 교회의 선지자가 연차 대회에서 최초로 한국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순간이다.

이런 맥락에서 1900년 10월 대회는 교회가 19세기를 뒤로 하고, 십일조의 법을 통해 부채에서 벗어날 발판을 마련하고, 유타가 정식 주로 승격되고, 복수 결혼에 따른 여러 문제를 넘어 선지자들이 주님의 포도원으로 눈길을 돌리는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총관리 역원으로 봉사했던 한 저자는 이 시기를 이렇게 지적했다.

“교회가 그런 아주 먼 땅[일본]에서 복음의 문을 열 수 있으려면, 교회 본거지에서 재정적인 안정을 필히 찾아야 했다.” (Francis M. Gibbons, “Heber J. Grant: Man of Steel, Prophet of God”, 110~111쪽)

그렇다면 당시에 일본과 이웃한 한국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조선의 고종은 1897년에 대한제국을 선포했지만, 대한제국은 청나라, 일본, 러시아 등을 비롯해 여러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좌: 제71차 반연차 대회 보고 (1900년 10월), 우: 연차 대회를 위해 모인 성도들, 1911년 4월 대회
좌: 제71차 반연차 대회 보고 (1900년 10월), 우: 연차 대회를 위해 모인 성도들, 1911년 4월 대회

선교 사업의 시각으로 보면, 1882년에 조미수호통상조약으로 한국과 미국 사이에 문호가 서로 개방되었으나, 종교의 자유는 아직 전면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1884년 9월에는 미국 북장로회의 알렌, 1885년 봄에는 미국 감리회의 아펜젤러와 스크랜턴, 북장로회의 언더우드가 선교사가 아닌 의사 또는 교사 자격으로 입국하여 병원과 학교를 설립하여 간접적으로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류대영, “개화기 조선과 미국 선교사”, 제1장 미국의 한반도 진출 참조)

대한제국의 이런 상황 속에서 조지 큐 캐넌 회장이 한국을 언급하고 거의 11개월 뒤인 1901년, 9월 1일에 십이사도 정원회의 히버 제이 그랜트 장로는 일본 선교부 회장으로 부름을 받아 요코하마에서 일본을 복음 전도지로 헌납했다.

회복된 복음을 위해 우리나라의 문이 열려 많은 열매를 맺으려면 포도원의 주인이 땅에 거름을 줄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주인의 종들은 포도원의 가장 척박한 땅으로 가라는 속삭임을 받고 신앙을 행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종이 [포도원의] 주인에게 이르되, …… 이는 주인의 포도원 모든 땅 가운데 가장 척박한 곳이었음이니이다 …… 포도원의 주가 [종]에게 이르되, 나에게 권고하지 말라. 나도 이 곳이 척박한 땅인 줄 알았노라. 그러므로 …… 내가 이 오랜 세월을 그것에 거름을 주며 길렀다 하였노니, 그것이 많은 열매를 맺었음을 네가 보느니라” (야곱서 5:21~22)


알아두세요 : 연차 대회 일정의 변화

매년 4월과 10월에 열리는 연차 대회는 교회 회원들이 선지자들을 지지하고, 말씀을 듣는 아주 중요한 행사이다. 4월 대회를 연차 대회, 10월 대회를 반연차 대회라고 부르며, 역사적으로 4월 대회는 교회 설립일인 4월 6일을 포함해서 열리다가, 시대적 사회 흐름을 반영하여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 시절, 1977년 4월 대회부터 4월과 10월의 첫째 토요일과 일요일로 변경되었다.


  • 기사 작성: 김대연 형제 (역사위원회, 전문가), adrianme@naver.com, 010-3764-6277
  • 삽화: 이인규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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