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은 양’을 향한 10년의 기다림과 노력

박성웅 형제님과 와다 장로님

부산 스테이크 박성웅 형제

아내가 함께 교회에 가자고 처음 권유한 것은 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아내는 고등학생 시절 침례를 받았지만 20대가 된 후로는 10여 년 간 저활동으로 지냈다. 결혼 후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아내는 “어떻게 이 험한 세상에서 자녀들을 보호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고민하다 주님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고 어린 아들은 등에 업고 딸 아이의 손을 잡은 채 교회를 다시 찾게 되었다. 그 무렵의 나는 일요일이면 늦잠을 자는 것이 일상이었다. 함께 교회에 가자는 아내의 권유에 “당신과 우리 자녀들이 교회에 다니는 것은 괜찮지만 나에게는 권하지 말라”고 답했다.

그러나 아내는 계속해서 권유했다. 선교사들이 새로 이동 올 때면 항상 집에 초대했고 수많은 선교사가 우리 가정을 방문하여 영적 메시지를 전했다. 한 외국인 자매 선교사는 몰몬경의 중요한 성구를 일일이 색칠하고 각 성구 옆에 포스트잇을 하나하나 붙여 자신의 간증을 써서 내게 선물로 주었다. 그 선교사의 정성과 사랑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많은 선교사가 영적인 씨앗을 뿌리고 가꾸느라 많은 수고를 들였다.

또한 아내는 크리스마스 모임이나 체육 대회와 같은 특별한 행사가 있으면 자녀들을 핑계로 함께 참석할 것을 계속 권했고 결국 일년에 몇 번씩은 교회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약 6년 전에는 아내의 간절한 권유로 한 달에 한 번은 성찬식에 참석하기로 약속하고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했다. 처음으로 정식 복음 토론의 일부를 듣기도 했다. 아들 역시 “우리 가족도 모두 다같이 교회에 다니면 좋겠어요.”라고 자주 말했다.

2017년 6월, 우리 가족은 교회 집회소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어린 자녀 둘을 데리고 혼자 교회에 가야 하는 아내에게 교통편을 제공하고자 교회 회원들은 매번 차로 데리러 오곤 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계속 우리 가족을 위해 수고하는 교회 회원들을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나는 직접 차를 운전해 가족을 데리고 교회로 가게 되었다. 한창 운전을 하던 중 문득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보았다.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며 행복해졌다. 교회에 도착해 마당에 들어서는데 이상하게도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랐다.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복음이라면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복음 안에서 자녀들을 양육하기 위해 혼자 지고 있는 책임을 이제는 나도 나눠서 져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매주 가족과 함께 교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장 침례를 받겠다는 결정을 쉽게 내리지는 못했다. 지혜의 말씀을 지키는 것도 어려웠고 하나님과 ‘약속’을 맺기에는 간증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가족, 선교사, 교회 회원들의 계속된 노력으로 나는 조금씩 준비되고 있었다.

2019년 3월 2일은 부산 스테이크 대회 토요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대회 며칠 전, 놀랍게도 감리자인 다카시 와다 장로님 내외가 모임 전에 우리 가정을 방문하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토요일 오전, 와다 장로님 내외는 조붕재 스테이크 회장님과 함께 우리 가정을 방문했다. 그분들과 대화하며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와다 장로님은 앨마서 32장의 ‘씨앗의 비유’를 설명하고 간증을 나눠주었다. 그 말씀을 듣는 동안 나는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어 와다 자매님이 ‘영원한 가족’에 대한 자신의 간증을 나누어주었다. 나는 이내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계속 눈물이 흘렀고 그동안 내가 가족을 잘 돌보지 않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싶으면 나 자신부터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 들었다. 와다 장로 내외의 방문 후 그날의 경험과 느낌에 관해 계속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아내에게 침례를 받겠다고 얘기했다.

침례를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선교사들과 교회 회원들은 헌신적으로 도와주었다. 특히 장로정원회 형제들은 선교사와 복음 토론을 할 때 1~2명씩 꼭 참석하여 자신의 간증을 나눠주었다. 또한, 족구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족.사.모.(족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결성하고 매주 토요일이면 함께 족구를 했다. 족구 활동이 있는 날이면 나머지 가족들도 교회로 모여 함께 어울리며 시간을 보냈다. 족구 활동을 통해 나는 와드 형제자매들과 더 깊이 친해질 수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은 역시 가장 큰 힘이 되었다. 침례 받기 두 달 전부터는 그동안 언젠가는 지키겠다며 미뤄왔던 지혜의 말씀, 특히 담배를 끊기 위해 노력했고 담배가 피우고 싶을 때는 가족을 생각하며 참았다. 어려웠던 경전도 아내와 함께 차근차근 공부했다. 그리고 6월 9일, 나는 가족, 선교사, 김해 와드 회원들의 큰 축하 속에 침례를 받았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잃은 양’을 위해 눈물의 기도와 금식을 드렸던 그들의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것이었다. (누가복음 15:6)

나는 한때 “나를 믿게 하고 싶으면 증거를 보여달라, 보지도 않고 어떻게 믿을 수가 있는가?”라는 말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고 있다. “거룩한 선지자들의 증거”와 경전”, 그리고 “만물이 하나님이 계심을 나타내”준다는 사실을 말이다. (앨마서 30:44)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살아 계심을 알고 있으며 언젠가 그분의 면전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내가 하나님 품 안으로 인도될 수 있도록 오랜 세월 기다리며 노력해준 가족, 선교사, 와드 회원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