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읽는 것을 도와주실 수 있나요?”

“COME AND HELP: 와서 좀 도와주세요.”

침례사진

대구 스테이크 이형도 형제

나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학업을 위해 고향 거창을 떠나 진주에서 하숙 생활을 했다. 첫 중간고사가 다가오면서 하숙집에서 지내던 여러 학생은 함께 모여 공부를 하곤 했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시험이 코앞이었는데도 하숙집에 다른 학생들이 보이질 않았다. 하숙집 주인은 학생들이 모두 교회에 갔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그 무렵부터 다른 친구들을 따라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인생의 결정적 시기인 청소년기에 교회에 다니며 기독교 가르침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내 삶을 지탱하던 뿌리 깊은 기둥은 바로 ‘조상’에 관한 것이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훌륭한 가풍은 내게 소중한 유산이었다. 아버지께서 계시고 또 할아버지께서 계신 덕분에 그 후손인 내가 이생에 존재할 수 있지만, 교회는 조상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고, 그분들의 구원에 관해서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이 부분에 의문이 많았던 나는 성인이 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이따금 아내의 둘째 오빠인 작은 처남이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함께 가볼 것을 권유하곤 했다. 그는 자신이 다니는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라고 소개했다. 처남은 수십 년간 교회 잡지인 ‘리아호나’를 꾸준히 보내주며 만날 때마다 이 교회의 복음을 배워볼 것을 권유했지만 나는 교회에서 마음이 멀어진 지 오래였고, 앞으로 살면서 교회에 다시 갈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작은 처남인 김진호 형제, 작은 처남의 아들이자 나의 조카가 되는 김현수 장로는 이미 교회 회원이었고, 큰 처남인 김진환 형제도 몇 년 전 이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2018년의 어느 봄날, 나는 조상과 관련된 기록을 찾기 위해 대전 뿌리 공원을 방문했다. 뿌리 공원에서 볼일을 보고 나오는 길에 공원 입구 근처에 걸린 노란색 현수막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노란 현수막에는 ‘가족 역사’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고 몇몇 봉사자들이 가족 역사의 중요성에 관해 안내하는 중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바로 처남이 다니는 교회인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에서 나온 봉사자들이었다. 교회에서 가족 역사와 조상에 관해 가르치다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봉사자들에게 간단히 설명을 들은 뒤 방명록에 연락처를 적어두었다.

몇 달 후, 방명록의 주소와 연락처를 보고 진주 와드 선교사들이 내게 연락을 해왔다. 선교사와 만나 가족 역사에 관해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누려 했으나, 진주에서 내가 사는 거창까지 거리가 멀어 만날 약속을 쉽사리 잡지 못했다. 그러던 중 내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가족 역사에 관해 관심을 두고 선교사를 만나려고 한다는 소식이 나의 형제들에게 전해졌다. 그중 대구 상인 와드에 다니던 큰 처남(김진환 형제)은 가족 역사에 관해 잘 아는 교회 회원과 함께 거창으로 와 교회의 가족 역사 사업에 관해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며칠 뒤 추석을 맞아 첫째 처남 부부, 둘째 처남 부부, 조카인 김현수 장로와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식사 중 최근 내가 교회의 가족 역사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일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큰 처남은 내게 “같이 교회에 다녀보자”라고 권유했고 종교적인 믿음을 가질 생각이 없었던 나는 “교회는 무슨 교회야”라며 거절했다. 그러자 김현수 장로는 “교회에 정말 좋은 가족 역사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족보도 잘 못 읽으니 고모부께서 좀 도와주시면 어떨까요?”라고 재차 권유했다.

족보 읽는 것을 도와주면 좋겠다는 권유에 나는 큰 처남이 다니는 대구 상인 와드에 나가 보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 후로 안식일마다 한 시간 반 걸리는 거리를 달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교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상인 와드 회원들이 가족 역사 사업을 위해 어떻게 노력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으며 큰 감명을 받았다. 나는 꾸준히 교회에 참석하며 회원들이 족보를 읽는 것을 도와주었다. 가족 역사 사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조상과 후손의 연결고리를 찾고 조상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는 이 교회가 정말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선한 가르침을 추구하는 교회가 나쁜 곳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침내 침례를 결심했고 2019년 5월 12일에 만 76세의 나이로 온 가족과 회원들의 축하를 받으며 김현수 장로에게 침례를 받았다.

한때는 내가 다시 교회에 다닐 것이라고 상상도 못 했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라 사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다. 이 귀한 복음을 나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자녀, 손자녀들과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그리고 조상의 구원을 위한 성전 의식을 직접 받을 수 있도록 잘 준비되기를 소망한다.

비록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내가 다시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작은 처남 김진호 형제의 오랜 기도와 인내 덕분이다. 평생 복음에 따라 생활하며 나에게 훌륭한 모범을 보여준 가족들은 내게 큰 축복이다. 가족이 영원할 수 있도록 길을 마련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의 계획에 감사드린다.

그림앞에 서 있는 형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