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에 최초로 들어온 교회 회원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군 부대와 함께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괌에는 군부대가 최소 4개 있었으며, 부대 내에 몇 개의 군인 모임이 조직되었다. 예닐곱 명으로 구성된 첫 그룹은 1944년 8월 브라이트 부대 예배당에서 모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모임은 군사 시설에서 열렸고, 참가자는 후에 수백 명으로 늘어났다.
괌의 영외 지부가 1951년 10월 9일에 조직되었다. 모임은 여러 회원의 집에서 돌아가며 열렸고 한 회원이 소유하고 있는 가게에서 열리기도 했다. 교회 회원들은 예배당을 지을 토지를 매입하기 위해 그해에 섬 주민들을 루아우(하와이식 파티)에 초대해 기금을 모았다. 루아우, 여러 번의 바자회, 빵 판매 등으로 모은 자금은 아니과 오브라이언 드라이브에 위치한 교회 부지뿐만 아니라 집회소로 사용할 군 막사 두 동을 살 만큼 충분했다.
1953년에 십이사도 정원회의 마크 이 피터슨 장로가 집회소를 헌납했고, 괌은 오아후 하와이 스테이크의 부속 지부가 되었다. 조셉 필딩 스미스 장로가 괌을 1955년 8월 25일에 선교 사업을 위해 헌납한 이후 1957년에 최초의 전임 선교사가 하와이에서 도착했다.
교회는 1964년에 바리가다 8번 국도변에 또 다른 집회소 부지를 매입했다. 에즈라 태프트 벤슨 회장이 괌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냈던 태풍 카렌의 거센 바람을 견뎌낸 “퀀셋 헛 채플”을 1970년 3월 10일에 폐쇄하고, 바리가다에 새로운 집회소를 헌납했다. 1959년부터 하와이와의 거리 때문에 중단되었던 전임 선교 사업이 1970년 7월 7일에 재개되었고, 그 이후로 교회는 계속해서 괌에 전임 선교사를 보내고 있다.
선교 사업이 괌 및 미크로네시아 전역에 활발히 진행되면서 미크로네시아 괌 선교부가 1980년 4월 1일에 설립되었다. 네 개의 지부로 구성된 괌 지방부가 미크로네시아 괌 선교부 산하에 조직되었으며 1989년에는 몰몬경의 일부가 차모로어로 번역되었다.
1985년에 엘 톰 페리 장로가 탈리사이(산타 리타)에 괌의 두 번째 예배당을 헌납했다. 괌의 세 번째 집회소는 1988년 지고에 완공되어서 헌납되었다.
교회는 선교 사업에 기울이는 회원들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개종자의 침례와 더불어 성장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엘 톰 페리 장로는 2010년 12월 12일에 괌의 첫 번째 스테이크를 조직했다. 현재 괌 바리가다 스테이크에는 괌에 와드 네 개, 사이판에 와드 한 개, 얍과 팔라우에 각각 지부가 한 개씩 총 일곱 개의 단위조직이 속해 있다. 회원 수는 총 사천 명이 넘는다. 스테이크 회장은 프레디빅 니세리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