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지역 목표를 통해 북 아시아 지역의 모든 회원은 다른 사람을 한 명씩 보살피며 사랑할 것과 복음에 대해 배우도록 권유하기를 권고받았다. 이를 실천해온 온양 지부 김춘희 자매는 남미경 자매의 재활동화와 그 자녀들의 침례라는 결실을 목격하는 특권을 누렸다.
“여행도 같이 갈 정도로 절친한 사이예요. 조금 멀리 살지만 최근에도 우리 집에 왔다 갔죠.” 김춘희 자매는 남미경 자매에 대한 남다른 사랑과 우정을 표현했다.
두 자매의 인연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춘희 자매가 선교사로 봉사했던 강원도의 태백 지부에서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청녀 남미경 자매를 처음 만났다. 세월이 흘러 남미경 자매는 세 자녀의 엄마가 되었지만 둘째를 출산하고부터 남편의 도움 없이 아이들과 교회에 참석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결국 셋째가 태어나자 드문드문 참석하던 발길마저 끊기게 되었다. 그 후 남편의 직장 사정으로 충남 온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온양에 살고 있던 김춘희 자매는 태백의 회원으로부터 그 소식을 듣게 된다.
“우연히 제가 온양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춘희 언니가 저를 집으로 초대했어요. 아이 셋을 데리고 낯선 곳에 가는 것이 꺼려져 망설였지만 초대해준 언니의 성의가 고마워 거절하지 못했어요. 이것이 우리가 다시 만난 첫날입니다.” 식사를 마친 뒤 김춘희 자매는 선교사업 당시 태백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보여주며 함께 추억을 회상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김춘희 자매는 남미경 자매에게 종종 연락을 취했고 침례를 받을 수 있는 나이가 지난 남미경 자매의 첫째 자녀가 복음에 대해 배우고 함께 교회에 참석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긴 시간 떠나있던 교회에 적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홉 살, 여섯 살, 세 살, 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전쟁이었어요. 좋은 말씀을 듣고 제 신앙의 씨앗에 물을 뿌려야 하는데 모임 내내 막내와 씨름 하다 보면 말씀이 귀에 들어올 틈이 없었죠.”
김춘희 자매는 힘든 시기를 함께하며 잘 극복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 김춘희 자매는 당시의 상황을 겸손히 전했다.
“지속해서 식사 초대도 하고 교류하면서 선교사가 아닌 친언니처럼 지내고 싶었어요. 복음 안에서 다시금 돈독한 자매애를 느끼면서 추억을 함께 공유할 수 있음에 감사했죠.”
남미경 자매는 세 자녀를 복음 속에서 키우겠다는 소망과 회원들의 사랑으로 점차 강화되었다.
“지금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전쟁을 치르는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에도 안식일을 지키려 애썼던 것이 신앙의 뿌리가 되어 지금의 나와 우리 아이들이 교회 안에 있을 수 있게 됐어요.”
남미경 자매는 안식일을 지킴으로서 가정과 자녀에게 돌아온 축복의 결실이, 김춘희 자매의 용기 있는 권유와 사랑 덕분이라 말한다. “‘교회 가자는 말이 입에서 나오기가 쉽지 않았어. 네가 힘들어 할까봐 ….’ 라고 고백하던 언니의 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제가 다시 나오기를 얼마나 맘 졸이며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눈물이 나네요. 쉽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안식일을 지키도록 권유해 준 언니에게 감사합니다.”
남미경 자매는 2017년 11월 현재 제천 지부 청녀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