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 장로와 함께하는 노변의 모임

브라운 장로와 함께하는 노변의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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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1일 일요일 저녁 6시, 명예 총관리 역원인 엘 에드워드 브라운(L. Edward Brown) 장로와 함께하는 노변의 모임이 구승훈 장로의 감리로 동대문 와드에서 열렸다. 

브라운 장로와 한국의 인연은 그가 1957~1960년 한국에서 전임 선교사로 봉사하면서 시작되었다. 그가 한국에서 행한 봉사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그는 귀환 후 11년 뒤인 1971년, 한국 선교부 회장으로서의 부름을 수행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한국에 3년간 머물렀다. 당시 브라운 한국 선교부 회장은 1973년 아시아 대륙 최초의 스테이크인 한국 서울 스테이크가 조직되는 데 많은 역할을 하는 등 한국 교회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날 노변의 모임이 열린 동대문 와드는 선지자 스펜서 더블유 킴볼 회장이 서울 스테이크를 조직했던 역사적인 장소였다.

이후 1996~2001년, 브라운 장로는 칠십인 제이정원회의 일원으로서 북 아시아 지역 회장단에서 봉사했다.

말씀 순서에서 캐롤 브라운 자매는, “남편이 선교부 회장으로 봉사하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로 돌아가면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당시 한국의 생활 방식과 전통 같은 것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내게 많은 사랑과 지지를 보내준 것, 우리의 교사가 되어 준 것, 내 삶을 축복해준 것에 대해 여러분께 감사하다.”고 전했다.

브라운 장로는 한국에서 봉사했던 시기들을 회상하며, 그 시절 한국에 임했던 주님의 손길에 대해 증언했다.

 “(전임 선교사로 봉사하던 1950년대 당시) 저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이끌고 계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종과 지도자들을 준비시키고 계셨습니다.”

“1971년 선교부 회장으로 한국에 돌아왔을 때, 교회에서 가족과 가족의 단합이 증가한 것을 보았습니다. … 1973년, 킴볼 회장님이 바로 이 건물에 오셔서 서울 스테이크를 조직하셨습니다.”

브라운 장로는 김호직 형제, 박재암 형제, 조인식 형제 등 한국 교회를 위해 봉사해 온 여러 성도들에 대한 기억을 나누었다. 크고 작은 기적들과 소소하고 아름다운 일화들도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봉사하던 시절의 기억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듯 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모두 나누기 위해서는 서너 시간은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선교사를 따라 모임에 참석한 구도자들에게 브라운 장로는 특별히 권유했다. “제가 했던 것처럼, 무릎을 꿇고 주님께 진실하게 간구하십시오. 선교사가 가르치는 것이 정말 참된 것인지 여쭤보십시오. 진실한 마음으로 간구한다면 주님께서는 성신의 권세로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합니다.”

한국과 한국인들에 대한 사랑을 전하며, 그는 말씀을 마무리했다. “여러분에 대한 사랑을 전합니다. 우리가 다시 한 번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날 브라운 장로의 말씀에 앞서 지역 역사 고문인 서희철 형제가 브라운 장로의 약력을 발표했는데, 서 형제는 브라운 장로가 선교부 회장으로 봉사할 당시 한국 선교부 상호향상회 회장으로 봉사한 바 있다. 역사위원회 일원으로서 서 형제는, 브라운 장로에게 한국 교회 연대표를 선물했으며, 연대표에는 브라운 장로의 이름도 실려 있었다.

브라운 장로와 그의 아내 캐롤 브라운 자매가 방한했다는 소식에, 그를 기억하는 이들을 비롯하여 200명이 넘는 많은 참석자가 모임에 함께했다. 브라운 장로는 말씀 서두에서 10분가량 한국어로 말씀했는데, 때로 어색한 발음도 있었으나 참석자들이 이해하기에 충분한 수준의 유창한 한국어였다.

동대문 스테이크 장효정 자매는, “초기 교회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듣는 것은 참 오랜만의 일입니다. 40년이 지났는데도 이렇게 유창한 한국어로 간증을 전하시는 것이 정말 인상 깊었고 브라운 장로님이 한국을 정말 사랑하셨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도 정말 열심히 (봉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라고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