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속으로 – 역사와 추억의 발자취     

제 6화: 최초로 한국에 온 후기 성도는 누구일까? 1/2

시간 속으로 – 역사와 추억의 발자취

기사 작성일: 5월

  • 글: 김대연 (한국 교회역사위원회 전문가)
  • 일러스트레이터: 박희령 (한국 교회역사위원회, 일러스트레이터)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았다. 역사라는 것은 과거를 캐는 것이기에 시간이 흐르면서 더 많은 정보가 드러나기 마련이고, 그에 따라 그 대답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제부터 필자가 쫓아온 길을 함께 거슬러 올라가며 지난 시간을 살펴보기로 한다.

1. 한국 전쟁에 참전한 후기 성도 군인들 (1950년)

필자가 처음으로 속했던 와드는 서울 청운동 7번지, 즉 한국 선교부 자리에 있었다. 그곳은 당시 서울 스테이크 제4와드로, 후기 성도의 역사가 풍부하게 깃들어 있는 곳이다. 아마 필자가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1981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모임을 위해 먹을거리를 사려고 교회 근처의 가게에 들어갔다가 가게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동네에서 꽤 오래 사셨던 것으로 보이는 가게 주인은 우리 교회를 미국 교회라고 불렀다. 또한 와드의 어른들은 우리 교회가 6.25 전쟁 때 들어왔다고 말씀하셨다. 
“최초로 한국에 온 후기 성도는 누구일까?”라는 질문에 대해 당시에 들은 이런저런 정보를 종합해 보면, 어느 한 사람을 특정할 수는 없지만, 최초로 한국 땅에 들어온 후기 성도는 “6.25 전쟁에 참전했던 미국 병사들”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집회소
사진 1) 미 7사단 지역 후기 성도 군인 대회 1953년 가을, 한국

“미국 군인으로 한국에 파병된 많은 병사 중에는 귀환 선교사는 물론 예비 선교사들이 꽤 여럿 있었다.”(리아호나, 2014년 1월호, 지역 소식, 8쪽)
우리는 6.25 전쟁에 참전했던 후기 성도 군인들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미군이 한국 땅을 밟은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조선 말기에도 통상수교를 거부하는 상황 하에서 미군의 강화도 상륙이 있었고, 통상조약을 맺은 후에는 공식적으로 일정 규모의 군대가 주둔했었다. 그때는 군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후기 성도 군인이 그 안에 있을 가능성 역시 크지 않지만, 그럼에도 필자는 후기 성도 군인이 제법 많이 참전했던 제2차 세계대전 후, 한국 땅에 주둔했던 미군 중 후기 성도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기대를 접을 수 없었다.

2. 한국 독립 당시 주둔한 후기 성도 군인들 (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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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런 기대에 대한 단서를 1985년, 우연한 기회에 손에 들어온 잡지를 통해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대구 스테이크 중리 와드 독신 성인들이 만든 잡지인 『 높은 산 』 3호에 당시 한인상 장로(지역 대표)가 기고했던 5쪽 분량의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한국 역사”였다. 여담이지만, 이 잡지는 변변한 워드프로세서 컴퓨터 프로그램도 없던 시절에 140여 쪽의 기사를 모두 손으로 적고 내용도 알차게 만들어져,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 봐도 감탄을 자아낸다. 지금이야 인터넷에서 검색어를 입력하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그 시절에는 역사 전공 교수들도 해외로 나가서 직접 도서관이나 문서보관소를 직접 뒤져야 하던 시절이었다. 대구에서 만든 그 잡지가 서울에 사는 대학생이던 필자의 손에 들어온 것은 거의 기적이나 다름없다. 사실, 이 잡지는 편집자가 당시 성도의 벗 편집인에게 보낸 것인데, 필자가 교회 역사에 관심이 많은 것을 안 편집인이 필자에게 건네준 것이었다. 사진에 그의 서명이 있는데, 그는 필자의 첫 번째 감독님이기도 하다.

기사에는 1945년 10월 26일에 로빈슨 하사가 다른 12명과 함께 인천에 상륙했다가 1년 뒤에 돌아갔다는 내용이 서술되어 있는데, 그것은 LA 한인 지부 장희준 형제가 진술한 것으로 나온다. 당시 한인상 장로는 연차 대회 참석을 비롯해 미국을 오가며 이런 정보를 들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마침 지역에서 만든 출판물을 통해 공개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상당수의 교회 회원들이 참전했고, 당연히 한국에 주둔했던 미군 중에도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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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후기 성도 군인 그룹, 한국 서울, 1945 ~ 1946년

그 이후, 당시 한국에 주둔했던 군인 중 하나인 딕 해리스의 증언이 2002년 12월, 처치뉴스에 게재되었다. 하지만 필자는 2005년 한국 교회 50년사 편찬 작업에 본문 필자로 참여하던 중, 2005년 3월에 해리스 형제와 연락이 닿아 관련 자료를 직접 받았으며,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당시 후기 성도 군인들은 모임을 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민 접촉을 통해 복음을 가르쳤고, 거의 침례 직전까지 간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현대 세계사에서 온 세상을 격랑 속으로 밀어 넣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기 성도 군인들이 이 땅을 지나갔던 것이다. 이들이 오래도록 머물며 한국민들과 많은 접촉은 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발걸음이 있었다는 자체는 복음이 그만큼 우리 주변에 와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군인들 이전에도 한국 땅을 밟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먼저 언급할 사람은 바로 일제 강점기에 한국에 왔던 젊은 사도, 데이비드 오 맥케이 장로다.

3. 데이비드 오 맥케이 장로의 세계 일주 여행 (1921년)

2003년에 교회에서 교재로 사용했던 “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데이비드 오 맥케이”에는 이런 언급이 있다.
“세계적인 교회를 인도하도록 데이비드 오 맥케이를 준비시킨 다른 경험들도 있었다. 1920년 12월에 그는 Improvement Era의 편집인인 휴 제이 캐논 장로와 함께 히버 제이 그랜트 교회 회장과 안톤 에이치 런드 회장 보좌에 의해 온 세계에 있는 모든 교회 선교부와 학교들을 방문하도록 성별되었다. 일 년에 걸친 여행을 하는 동안 그들은 거의 100,000킬로미터(지구 둘레의 두 배가 넘음)를 다니면서 전 세계에 있는 교회 회원들을 가르치고 축복해 주었다. 뱃멀미, 고향 생각 및 여행에 따른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1921년 성탄절 전야에 집으로 돌아왔다. 도착한 후에 그들은 그랜트 회장에게 상세한 보고를 드렸으며 그 부름에서 영예롭게 해임되었다.”(xxi~xxii쪽, 또한 Highlights in the Life of President David O. McKay, 66~72쪽 참조)
맥케이 장로와 캐논 장로는 문자 그대로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서쪽으로 출발하여 벤쿠버, 일본, 한국, 중국, 하와이, 타히티, 뉴질랜드, 사모아, 통가, 호주, 싱가폴, 미얀마, 인도, 이집트, 팔레스타인, 미국을 여행했다. 사실, 당시 한국은 일본에 강제 점령되어 있었기에 맥케이 회장의 성역과 관련해 별다른 활동은 없었으나, 그는 1921년 1월 6일에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고마마루라고 하는 3,000톤급 배를 타고 다음 날 아침 9시에 부산에 내려 경부선 철도를 이용해서 중국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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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맥케이 장로와 소달구지, 1921년 1월, (부산 추정)

이런 방문에 관해서는 스펜서 제이 팔머 형제(BYU 교수, 제2대 한국 선교부 회장, 한국 성전 회장 역임)가 한국 선교부 회장으로서의 봉사를 마치고 1970년에 저술한 “The Church Encounters Asia”, 30~31쪽에 간략히 기술되어 있는데, 맥케이 회장의 이 여행에 관한 이야기는 별도의 기사를 통해 다루기로 한다.
다만, 김호직 박사가 미국에서 개종하는 과정에서 맥케이 회장을 대면해 만났을 때 커다란 영적인 느낌이 있었으며, 맥케이 교회 회장 시절 한국 헌납이 이루어졌음을 기억한다면, 당시 그의 세계 일주 여행이 교회의 세계화에 미친 영향을 가늠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가 현대사에서 암울한 시기에 있을 때 이 땅을 지나쳐간 주님의 종은 맥케이 장로뿐만이 아니었다. 1901년에 개설된 일본 선교부에서 임기를 마친 2명의 선교부 회장, 즉 앨마 오언 테일러 회장과 앨버트 덩컨 토머스 회장도 귀국 길에 한국을 들렀다.

 

(제2부에서 계속)


사진출처

1. Saints at War, vol. 2 (2003), 117.

2. Saints at War, vol. 1 (2001), 363.

3. The Church Encounters Asia, Spencer J. Palmer (1970),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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